[강의이야기] 당신이 강사로 성공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
이유 #2. 준비 없이 시작하기.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어떠한 준비도 없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그 상황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가 판가름 나기도 한다.
제 아무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예측하고 그에 맞게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임기응변만으로 해결하겠다고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재미있는 건, 강사들 중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준비 없이 시작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일을 준비하다가 잠깐 시간이 남아서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하는 경우도 많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시작한 경우도 종종 본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만 두겠노라고 습관처럼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세상의 그 누가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마는 강사들 역시 참으로 다양한 사연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수영을 몇 년 간 배운 적 있다. 맥주병 신세였던 나는 이젠 제법 그럴 듯하게 수영을 한다. 수영장에서 물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바로 준비운동이다. 적절하게 스트레칭을 한 경우에는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훨씬 부드럽다.
수영을 위해서도 이렇듯 준비가 필요하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준비 없이 강단에 섰다가는, 첫 강의에서 제대로 시간도 못 채우고 도망친 나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강사가 되기 위해 가장 많이 하는 준비라야 가르칠 과목에 대한 공부가 대부분이다. 전체 강의일정을 짠다. 몇 시간동안 강의를 할 건지, 매일 어떤 내용을 가르칠 건지 정리한다. 조금 더 준비하는 경우에는 매 시간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정리를 한다. 이쯤 되면 나름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과연 그럴까?
제대로 강사 훈련을 받지 못하면, 강의 과목에 대한 준비를 아무리 철저하게 한들 매끄럽게 강의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나 역시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말하는 속도, 억양, 목소리 톤, 옷차림, 몸짓 하나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준비하지 못하면 유능한 강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부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강의를 시작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 이런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강의를 시작하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요즘에는 전문적으로 강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는 학원도 생겼다.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지에 따라 세세하게 트레이닝을 한다. 수강료도 제법 비싸다.
이런 학원에 다니면서까지 준비해야 할까? 그 판단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도 있고, 거울을 보며 혼자 연습을 할 수도 있다.
금전적 여유가 있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싶다면 전문 강사 훈련을 받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강사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까지 생겼다는 사실은 강사라는 직업이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강의 일정을 짜고 강의 원고를 만들고, 배포 자료를 만드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남들 앞에서 일관된 주제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필요하고, 수강생 모두에게 관심을 주어야 하며, 수업 시간 내내 적절한 긴장감과 흥미 유발, 효과적인 지식의 전달에 이르기까지 강의실에서 강사는 만능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사람을 상대해서 말이다.
수강생은 강의를 듣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강의를 듣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만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강의를 듣게 되어 수강생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로 인한 수강생의 피해는 자못 크다.
당장 수강료라고 하는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고,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며, 강의를 듣지 않았을 경우에 그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기회비용의 손실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강사가 준비 없이 강단에 오른다? 이건 단순히 강의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강사로서의 경험치가 쌓이면 언젠가는 좋은 강의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강의를 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강의를 들었던 이들이 보게 되는 손해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어떤 일이든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혼자 하는 일이라고 하면, 그 일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본인이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손해가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가해진다는 점에서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몇 년 전, 꽤 유명한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 있다.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 큰 기대를 품고 강연을 듣기 위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 날의 강연 주제에 대한 책도 몇 권 쓰셨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강연이 시작되고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나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책을 낸 기념으로 진행한 강연이었다. 따라서 내용이라야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강사 입장에서는 결코 어렵거나 생소하지 않은 강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로 심각하게 다가온 문제는 그 분의 말소리였다. 마이크를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우물거리며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게다가 자료라고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펼쳐진 화면에는 워드프로세서로 빽빽하게 타이핑한 글자만 가득했다. 심지어 강사 자신도 화면을 보지 않고 말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큼직한 화면 가득 채워진 글자는 무엇 때문에 마련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웅얼거리는 말투는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억지로 듣다 보니 불과 십여 분만에 녹초가 되어 버렸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어찌 견딜지 막막했다.
중간에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으니 내 기억으로는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수강생을 배려할 생각은 전혀 없는지, 아니면 자신의 강연이 무척 재미있는 양질의 강연이서 수강생들이 즐거워할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강연은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겨서 끝이 났다.
그 분은 좋은 책을 쓰는 작가일 뿐, 절대 강사는 아니었다.
강사는 쉬운 직업이 절대 아니다.
만일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뛰어든다면?
결론은 둘 중 하나다.
하나. 나중에라도 깨닫고 열심히 준비한다.
둘. 그게 아니라면, 강사로 망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완성된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강사라는 직업을 해보진 않았지만 많은 청중들 앞에서 떨지않고 헛소리/반복되는소리 안하려면 리허설 같은것도 따로 여러번 해야 되겠군요.... 그리고 그 작가님도 강연은 안하시니만 못하내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 작가님의 책은 여전히 잘 읽고 있습니다...만, 그 후 한 두번 더 강의가 있었는데 관심을 갖지 않게 되더라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