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도와주는 운동은 현실 어디에도 없다
경향신문 스크랩을 5년은 매일 같이 했던 것 같다. 그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꽤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는데 지금도 떠오르는 감동적인 기사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기사의 이야기야말로 모든 사회문제와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범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건물을 비워줘야 해서 센터 설립 비용 몇 억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지만 1~2억원 가까이 돈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이주노동자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다음부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모아서 부족한 돈을 채워준 것이다. 이러한 전 과정을 지켜보았던 담당자의 코멘트에 나도 오래된 벽 하나가 깨진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를 돕는 단체를 운영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이주노동자지원센터의 주인공이 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가 타자가 아니라 주체로 참여한 아주 귀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 해당 이미지는 이 글과 관계 없음
미투 운동이나 다양한 약자를 위한 운동들이 그들을 '약자'와 '타자'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이 문제의 가해자들이나 방관자들, 적어도 권력자/기득권자들에게 해결해달라고 조르는 상황은 아닌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자와 피해자들이 타자가 아니라 주체로서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의 자리에서 보조를 해주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남이 나를 도와주는 운동은 현실 어디에도 없다.
만약 '미투'가 제대로 된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고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발의 안전한 구조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쓰신 글이 많더라고요. 하나씩 챙겨서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