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입니다. 시와 소설에 대한 평론과 사회문제, 사람에 대한 글을 엮은 산문집으로 읽는 동안 다른 책을 손에 쥘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록된 글 중에 소개하고픈 문장과 글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를 가끔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백낙청 선생의 새 평론집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2011)이 출간되었다. 기왕 말을 꺼냈으니 제대로 된 서평을 써야 도리일 텐데 그럴 형편이 못 된다. 특별히 오래 머문 대목이 있다. “오늘도 수많은 문학론 시론 소설론 들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계속 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대개가 어떤 정답을 이미 전제하고 출발하거나 쉽게 정답에 도달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음을 제대로 물을 때 정답이란 없다.”(39쪽) 왜 정답이 없는가. 누군가 쓰고 또 누군가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문학’ 개념이 탄생하기 때문이라는 것. 저 문장의 더 두터운 본래 맥락과는 별개로, ‘쓰기와 읽기’라는 행위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은 몇 개월 전에 출간된 두 권짜리 앤솔로지 <우리가 보낸 순간>(마음산책·2010)의 말미에 소설가 김연수가 적어놓은 문장이다. 먼저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중략)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 다섯 배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러므로 한 번 비난을 받으면 다섯 번 칭찬을 받아야 마음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인 것이어서 그 덕분에 우리 존재가 실제로 바뀔 수 있다는 것 등이 그의 체험적 결론이다.
그리고 ‘읽기’에 대해. 김연수는 ‘무용한 독서’의 소중함을 말하는 와중에 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후배로서 선배의 결론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읽고 쓰는 일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뒤 대학생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매체의 기자와 만날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선배의 위치에서 몇 마디 늘어놓아야 했다. “저는 멘토가 될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꽤 많은 것들이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겠죠. 아무리 조심해도 분명히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될 거예요. 그 난관을, 여러분은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돌파할 거예요. 인간이니까.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그리고 훗날 회한과 함께 돌아볼 때가 올 텐데, 바로 그때, 뭔가를 배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달라질 거예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뒤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문학은 그 믿음의 지원군이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피 흘리지 않고 인생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을 나대로 시도해보았으나 결과는 이렇게 변변찮다. 수없이 다시 물어야 하리라.
인생도 컴퓨터 게임처럼 저장과 불러오기가 되면 마음이 얼마나 편할지 한 번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흘린 물을 주워담을 수 없듯, 실제 우리가 행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요. 삶의 매순간이 실수의 연발이라는 느낌과 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문학은 훌륭한 저장과 불러오기의 매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주변 혹은 저멀리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도 없고, 혹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인생을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굳이 간접 경험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나아지는 길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시도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우는 문학의 효용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깨닫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저자: 신형철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간: 2018-09-22
무엇을 쓰는지가 중요한 거겠지요...?ㅠ
@machellin 좋은 글을 쓰고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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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합니다. 나는 쓰레기구나.
@naha 저는 쓰레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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