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은행원을 찾습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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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세를 포함한 금액이 대략 2만 5천 원 정도였을까? 당시 데이콤에서 서비스했던 천리안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돈이다. (위 사진은 하이텔의 화면이다.) 중학교 3학년 즈음부터 PC 통신을 했는데, 나로서는 부모님의 후원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싼 이용료를 치러야 했다.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했던지라 이제 막 서비스 명을 바꾼 하이텔과 당시 주로 서울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나우누리까지도 가입했었다. 당연히, 용돈으로는 부족한 이용요금이 청구되었고, 그 모든 감당은 모친께서 짊어지셔야 했다. 자초지종을 모르시던 아버지는 웬 공과금이 이렇게나 많냐면서 모친을 닦달하셨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불효 자식이 아닐 수 없었다.


PC 통신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겨울 방학 아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 나를 다급한 목소리로 흔들어 깨우셨다.

"일어나 봐라, 얼른!"

나는 채 다 뜨지 못한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한 손에는 공과금 영수증들이 쥐어져 있었고, 한눈에 보아도 갑작스럽게 늘어난 통신료에 대한 성화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니, PC 통신으로 뭐 하는데?"

"얘기했잖아요, 사람들이랑 대화도 하고, 글도 쓰고, 필요한 정보도 얻는다고요."

"은행 여직원이 그라는데, 요즘 아들(애들의 경상도 표현) PC 통신으로 야한 거 보고 그란다 카든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단지, 늦은 밤까지 컴퓨터를 하는 그 모습 자체가 싫어서 몇 마디 하겠거니 싶었다. 아니면 너무 많이 나오는 요금에 모두 줄이고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실 줄로 알았지, 그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흔들어 깨웠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비싼 요금과 전화세를 따로 내가면서 내가 왜 그런 것을 해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것은 그런 야한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따지자면 그 은행원 덕분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말한 은행원이 누군데요?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것도 엄마가 방금했던 그 말 때문에 알았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그따위로 떠들지요, 그 은행원이 누군지 말하세요. 당장 가서 귀싸대기 한 대 올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안 한단 말이가?"

"안 한다고요!"

"앞으로도 안 할 거가? 니 이랄거면 PC 통신이고 뭐 싹 다 불사질러버린다"

"..."

정말이지 그 순간에는 그 은행원을 찾아가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부아가 치민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고작 원격지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고, 또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설레하고 있었다. 또한, 프로그래밍을 위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구가 되어 주었다. 당시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붐이 조성되기 시작했었고, 덕분에 컴퓨터를 전공하는 대학생 누나 형님들로부터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기법 또는 트러블슈팅을 접할 수 있었기에 나로서는 그만한 선생님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중고등학생으로서의 직분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과, 지금껏 살면서 후회하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놈의 약속을 하란 건데요? 차라리 그 은행원한테 가서 따져요."

그날 아침의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의 생활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던 대로 정보를 교류했고, 프로그래밍 기법과 시장의 동향 그리고 전공생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혼자서 MIDI 음원을 만들어서 게임에 삽입할 재료로 준비했고, 페인트 샵을 배워 도트 디자인도 했다. 게임상에 구현되는 모든 배경 화면과 캐릭터의 디자인을 점 하나하나를 찍어가면서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웠고, 음영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웠다가 새로 만들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슈퍼 윙'이라는 게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천리한, 하이텔, 나우누리 3사 게시판에서 1위와 2위를 번갈아가면서 오래도록 상위에 랭크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프로그래밍에서 손을 뗀 지가 20년이 다 돼 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살면서 느껴 본 어떤 아찔함보다도 더 크게 다가온다. 지금으로 보자면 드라곤 플라이트와 같은 게임이었는데, 그런 걸 혼자서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면 나도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드라곤 플라이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잘 발달되고 여러 사람들과 협력을 이루어 스타트 업을 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되었다면 나도 충분히 그런 대박 하나는 칠 수 있지 않았을까? ;)

이후로도 몇 개의 게임을 혼자서 만들었고, PC 통신 자료실에 출시(?)를 하면서 마이컴이라는 잡지에도 조그맣게 게재가 될 정도로 나의 아이디는 유명해졌다. ㅋㅋ 또한, 어셈블리어를 활용한 하드디스크 스핀들의 회전 속도를 향상시키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는데, 이전에 만들었던 그 어떤 게임과 유틸리티를 훨씬 압도하는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하드디스크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그걸로도 부족했던 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오버클럭킹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 맞다. 이건 내 자랑이다. 몇 번의 성공과 함께, 더욱 욕심을 냈던 나는 혼자서 더 많은 것을 하려고 하다가, 스무 살을 고작 넘은 시점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만둔 이후로는 서버 엔지니어링과 관리를 거쳐 가상화 그리고 클라우딩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외국계의 IT 기업에서 애플리케이션 분석과 인프라 어드민을 겸하고 있다.

만약, 나의 온당한 의지가 그 고작 은행원 한 명에게 꺾일 정도로 약했거나 당위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IT 업계에서 밥을 먹고살고 있었을까? 물론, '고작' 그 한 사람 때문에 의지가 꺾이거나 꿈을 접어야 할 정도였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할리가 없을 이유로, 제대로 된 물음은 아닌 것 같다. 가끔씩 나는 부모님께 당시로서는 몹시도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을 컴퓨터를 사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때, 18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서 내한테 컴퓨터 사주신 거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셨지요?"

"그래, 맞다! 니 말이 맞다."라고 엄마는 대꾸를 하시고, 아버지는 옅은 웃음을 띠고 계신다.

암호 화폐와 블록체인 생태계에 대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얄팍한 수준의 지식을 급조하여 있는 대로 입을 놀리는 정부의 관료들과 수많은 보수적 꼴통들이 판을 친다. 국민을 상대로 적법한 법안과 규제안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거래소 폐쇄"를 쉬이 입에 담아 시장을 위축시킴으로써,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또한, 수많은 국민들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안겼으며, 이후에는 그들의 지지율 이탈을 계산에 집어넣는 어느 놈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지금껏 숱하게 보아온 위정자들의 본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들이나 할 법한 졸속한 정책과 언론 조장을 통해 세수 확보와 투기 차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심산인 듯싶다만, 어디까지나 국민을 기만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 유망한 새싹을 짓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는 단지, 내가 암호 화폐에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로 인한 손해가 발생해서가 아닌, 오로지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가 가져다줄 신문물과 사회 변화의 가능성의 새싹을 마주하기도 전에 우리의 무지로 말미암아 죽여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서다. 세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흥선대원군과, 당시 인터넷을 바라보던 몰지각한 사회단체와 그 시류에 휩쓸린 조악했던 정부 관료들 덕분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뒤처졌고 또 그럴 뻔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면 한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제대로 된 이해와 시작 정도는 해보고 나서 이렇다 저렇다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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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행원은 지금도 블록체인을 비난하면서.. 다른 분들에게 뻘소리나 하고 있겠죠? ..스스로가 그렇게 기회를 놓치기만 할 것 같습니다.

IT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멋지신거 같아요.. 저의 로망입니다. ㅎㅎ 프로그래밍을 파박파박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IT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서 새련되게 일하시는 분은 잘 없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이라면 모르겠네요. 다들 노가다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ㅋㅋ

ㅎ 취미로 하던 걸 업으로 삼으셨네요ㅎ 살면서 하는 작은 선택들이 삶의 길을 만드는 것 같아서 뭘 하나 선택할 때 주저하게 돼요.ㅎㅎ 글의 주제는 후반부에 있는 듯하지만, 어린 시절 얘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은행원은 왜 넘겨짚었을까요? 그렇게 말해서 좋을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요.

취미는 아니었습니다. 7살 때, 동네 이웃의 형님 방에서 컴퓨터를 처음 보았을 때, '이거다!'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제 삶의 방편을 그때부터 이미 세워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살았네요.

퐁당님은 글 쓰는 분 인줄 알았는데 첨단 일을 하시네요^^
대단하셔요~ 글도 참 잘 쓰시고~~^^

과찬이십니다. 다만, 한 때 쏟아부은 열정이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이만큼 지나고 보니 결과 보다는 과정에 더 많은 애착이 갑니다.

사람이 다 자기 밥그릇이 있는 모양입니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정부의 관료들도 그게 그들 밥그릇인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는 것이 아니라지요. 맞아요. 그들에겐 밥그릇일겝니다.

천리안 이용자셨군요. 반갑습니다.
쓰신 글 내용 보니 동경? 했었던 분 중 한 분일 것 같네요 ㅎㅎ

아.. 천리안을 하셨더랬나요? 반갑네요.

앗!! 은행여직원 넘 욱교요 ㅋㅋ 혼자 웃어서 죄송요 ㅜㅜ 그 여직원은 야한것만 봤나봐요 글도 잘 쓰시는데 it업계에서 일도 하시고 정말 재능이 넘쳐나시네요^^

회신하였습니다.

아직 궁금하시다는 것 질문 안하셨죠?

메일드렸습니다!

역시 즐기는 사람은 못당합니다. 전 소싯적에 공대를 다녔습니다. 그것도 컴퓨터공학과였죠. 나름 유망하다고 해서 가게 된 것인데, 즐기면서 하는 친구들을 따라가는 건 무리더군요ㅎ 딱히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정도로는 어렵더라구요. 밀크님처럼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서 성공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글 재미있게 잘 봤어요.

소울님이야말로 공대생이시면서 어쩜 문예적 재능이 이리도 뛰어나신겁니까?

저로서는 그 때 그랬다는 사실이 다행스럽습니다. 그래도 한 때, 그만한 열정이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뭐 공대는 잠깐 다니다 그만 뒀지요.ㅎ 맞지 않는 옷이라, 군복무 후에 다시 수능을 쳤습니다. 말하자면 얘기가 깁니다. 밀크님의 그때 열정이 열기처럼 훅 와닿는 것 같습니다.^^

와... 어쩌면 저도 퐁당님이 만드신 유틸을 한 번쯤 거쳤을지도 모르겠네요. 퐁당님을 국회로!

조선생님의 영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조선생님이 뉘신지요?

https://steemit.com/kr/@dakfn/tutorcho

이 분이십니다.
요즘 꽤 유명하신 가즈앗~ 선생님이죠.

ㅎㅎ 그렇군요.

에이.. 국회는 아무나 가나요. ;)

얼마나 억울하셨겠어요 ㅋㅋ 야동 안 봤는데..ㅎㅎ
상당히 젊은 나이에 혼자서 게임을 만들고, 속도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드셨다니 감탄했습니다.

네, 몹시 억울했습니다. 진짜 꿀 잠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프로그래밍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부분은 저랑 안맞다고 해서 담을 쌓았는데 코인 투자를 하다보니 시대의 흐름상 처음에 어렵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만 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중이에요.

만약, 나의 온당한 의지가 그 고작 은행원 한 명에게 꺾일 정도로 약했거나 당위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IT 업계에서 밥을 먹고살고 있었을까? 물론, '고작' 그 한 사람 때문에 의지가 꺾이거나 꿈을 접어야 할 정도였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할리가 없을 이유로, 제대로 된 물음은 아닌 것 같다.

이 글에 완전 공감이가네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언가를 포기하게된 것에 대해. 혹은 기회를 놓치게 된 것에 대해 다른사람을 탓하는데, 결국은 본인의 의지가 문제겠죠.

맞습니다. 의지가 중요하지요. 다만, 그렇더라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불가항력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가끔 주변의 갓 20대 중반의 친구들을 보면 참 고생스럽고 힘겨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