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Q씨의 출근길에서 있었던 일
“어서 옷 입으세요, 이러다 늦겠어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의 입에 아침 일찍부터 삶은 고구마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며 그의 아내가 말했다.
아내가 미리 준비해둔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으며,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는 간식을 담은 도시락 가방을 손에 들고 뒤를 따랐다. 한쪽 다리로 겨우 균형을 잡으며 신발을 신느라 이리저리 몸을 기우뚱 거리는 남편을 보며 싱긋이 미소를 보였다. 그제야 도시락 가방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여보, 잘 다녀오세요~”
Q가 바라보고 있던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자마자 좌측과 우측 도로에서 동시에 차량들이 움직였다. 좌측 도로에서 정차 중이던 버건디 색의 자동차는 직진을 하는 모양새였는데, 맞은편 우측 도로의 두 대의 차량도 거의 동시에 정지선을 떠나고 있었다.
‘저 자리에서 지금 좌회전이 되나?’
우측 도로의 두 대의 차량은 직진이 아닌 좌회전을 하고 있었고, 별안간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 Q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운이 좋은 선행 차량은 맞은편 직진 차량보다 먼저 정지선을 벗어난 덕분에 별문제 없이 교차로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행렬 중 후미의 흰색 말리부는 마주 오던 버건디 색의 i30과 충돌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벌어졌다.
길고도 깊은 경적소리가 차량의 보닛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운전자의 분노를 대변하듯 날카롭고 난폭했으며, 밤 사이 내려앉은 새벽 공기를 갈라 찢어 놓기에 충분했다. 수초 간 울려 퍼진 그의 분노는 사방 몇백 미터를 정적케 했고, 도로 위 정차 중이던 운전자들의 고막을 짓이기며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의 임기응변은 훌륭했다. 브레이크를 밟으며 순간적으로 꺾은 핸들 덕분에 아침 댓바람부터 교통사고 처리를 해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몸을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고, 그 가운데 발생할 경제적 손실도 감당해야 했을 테다. 두 차량의 법규상 사실 관계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뛰어난 순발력이 그 많은 샐러리맨들의 출근 시각을 지켜줄 수 있었다. 잘잘못을 떠나 사고를 피했다는 사실은 모든 이에게 다행이었다.
상황 자체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상대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의례적인 행동이었을까? 좌회전을 하던 흰색의 말리부 차량에서 비상등이 깜빡거리고 있었고, 차량은 유유히 교차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운 좋게 위험천만한 상황을 피한 그 두 사람은 가던 길을 계속 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Q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의 안도가 끝나기도 전에 영화 속에서 볼 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전의 경적 소리로는 부족했을까? 아마도 i30의 차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말리부가 교차로를 빠져나가는 것을 본 그는 핸들을 꺾어 말리부의 꽁무니를 향해 급선회 했다. 가속 페달을 깊숙히 짓눌러 밟았다. 묵직한 엔진의 폭발음은 타들어가는 휘발유와 함께 밤 사이 피어오른 안개와 축축했던 주변의 공기를 빠르게 집어 삼켰다. 일대의 공기는 순식간에 메말라버렸고 매캐한 기름 냄새만 진동했다. 바싹 마른 공기는 Q의 입술의 물기 마저 개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아스팔트를 긁어대는 마찰음과 함께 피어오른 회색의 연기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무소처럼 바닥을 굴리고 있고, 금방이라도 불이라도 날 것처럼 뜨거운 바람이 아지랑이를 타고 보닛 위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눈치 빠른 운전자들 중 일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을 창밖으로 치켜들어 올려 휘휘 젓고 있었다. 차량들의 창문이 내려가는 모터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다.
“아이고, 저 저 저 봐라 일 하나 치루겠네”
“싸우는 거 아냐?”
“여잔데?’ 괜찮겠어?”
무소의 뿔을 들이민 i30이 말리부를 따라잡아 앞을 가로 막아섰다. 갑자기 차를 세운 i30 덕분에 뒤를 따르던 차량들이 하나둘씩 급정거를 했다.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유턴 신호를 기다리던 Q가 조금씩 가까스로 차를 돌려 나가려던 중, 흰색 말리부 차량에서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옆 사무실, 여직원이었다. 순간, 그의 앞을 가로막은 차와 함께 조금 전 교차로 내에서 벌어진 상황이 재정리되고 있었다. 사고를 피하기는 했다지만, 둘 중 누군가에게는 잘못이 있었을 것이고, 또 최소한 그 둘 중 한 명은 그 상황에서 대해서 다른 상대방보다 훨씬 더 큰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여직원은 ‘나는 잘못이 없다.’고 큰 소리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과실은 따져 보아야 알겠지만, Q의 계산이 거의 마무리가 될 즈음, i30 운전자의 입에서 담기도 민망할 정도의 욕지기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Q가 차를 세우고 즉시 내려 여직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 한 후 상대방을 향해 걸어갔다. i30 운전자는 주먹을 크게 말아 쥐고, 여직원 차량의 유리창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 강도가 어찌나 강했던지 차량의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여직원은 대략 2센터 정도로 창을 내리고 무어라 이야기하며 되받아 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역부족이었다.
그러고 그냥 그렇게 내빼고 있냐?"
나는 당시 Q가 말리는 내내 약 5분 가까이를 뱉어낸 욕을 모두 기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낯부끄럽고, Q도 그 상황에서 애써 침착하기는 했지만 몹시 당황했다. 말로만 듣고 뉴스로만 접한 던 일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생전 처음이니까 그럴 만도 했다. 혹여 동료 직원이 여자라는 이유로 험한 꼴을 당하거나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을 걱정 때문에 무작정 차를 세우고 길 밖으로 뛰쳐 나가기는 했지만, 정말 운이 나쁘다면 오히려 그가 더 큰 화를 입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르신, 그만하시고 그냥 가시던 길 가시죠."
Q가 슬그머니 그를 껴안으며 만류했다.
"넌 뭐야 이 씨발 개새끼야, 너도 죽을래? 죽고 싶어?"
여직원은 112에 전화를 걸었고, 울음을 터뜨리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울음소리와 섞인 그녀의 말이 제대로 전달이나 될까 싶었다. 게다가 그 울음이 너무 컸기에 설령 알아듣는다 하여도 절반도 채 전달되지 못할 것 같았다. 절대로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피 위로 곱게 덮은 화장이 금방이라도 눈물에 녹아 지워질 것 같았다. 목덜미 주변의 피부가 울그락불그락 거리고 있는 것을 봐서는 그녀 역시 극심한 분노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대 운전자의 욕설과 난폭한 행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잠깐씩 Q의 만류와 제지로 숨을 골라쉬며 멈추기도 했지만, 채 풀리지 않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돌아가다 말고 돌아와서는 그녀의 차량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을 쏟아부었다.
10여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변을 지나는 차량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이 지역 사회에서 출퇴근 시간이면 가장 많은 자동차들의 통행이 이루어지는 길이었기에 한시바삐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큰 정체가 이뤄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했다. 여전히 길 한복판에서 옥신각신하는 3대의 차량 덕분에 주변은 난장판이 됐다. 이따금씩 비집고 나가려는 차와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하려는 차들 사이에서 경적소리와 짜증 섞인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결국, 여직원과 Q 그리고 i30 운전자는 이 상황의 원흉이 되어 버렸고,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이르렀다. 길 위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모습의 분노와 짜증 섞인 시선과도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수많은 시선과 원성이 자신으로 인한 것임을 알아차린 남자의 얼굴에서 옅은 홍조가 띄고 있었다.
남자가 떠나고 나서야 여직원이 차에서 내렸다. 눈물로 범벅이 된 화장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를 본 Q는 화장품의 워터프루프 성능이 워낙에 좋은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몇 가닥의 머리칼이 몇 분 전의 참상을 기록하듯 그녀의 얼굴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면 그녀의 눈물을 알아차리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Q는 마침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생수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뚜껑을 따서, 한 병을 건네며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물 한 모금하도록 하세요.”
“Q 씨 정말 고마워요. 아니었으면 저 엄청 처 맞았을 거예요”
그녀의 입가에서 엷은 미소가 번졌다. 무사히 상황을 모면한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맞고 난 이후의 자신의 상황을 떠올려서인지 한편으로 웃겼나 싶었다.
“경찰에 신고하셨죠? 괜찮으니, 증인이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렇다고 하세요. 언제든, 출석해서 진술해드릴게요.”
그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조금 전, Q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과입니다. Q 씨 되시죠? 아무개 씨의 사건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깐 서에 나오셔서 진술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말에 대해 써주셨네요. 멋있습니다.
출근길 묵직한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 마지막 장면은 Q의 진가가 느껴진 것 같아 조금 편안하네요..!
진가라고 까지 할 것 있겠습니까.
마치 제 앞에서 일어난 일인 마냥....짜릿해요. 무섭기도하구요. 우와우...
네, 무섭더라고요. ;)
세상은 참 요지경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그리면서도
아직 살만한 현실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별의 별 사람 다 있지요. 잠깐 멈추고 생각하면 될 일을 감정적으로 행동을 하여 큰 고초를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매번 고맙습니다. ;)
@홍보해
정말 분노 조절이 안되는 사람들이 최근에 너무 많습니다. 한순간에 타인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인생도 망치는 경우가 많은데...볼때 마다 아쉽습니다. 쉽게 고쳐지지도 않구요
너무 참는 것을 강요한 사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너무 성과에만 목을 메다보니 전인적 교육을 소홀했다는 것 역시 큰 원인이 되겠지요.
행복보다는 분노가 가득한 사회, 걱정입니다.
Q씨의 용기에 칭찬을 보내고 싶습니다.
참을 인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는데 더 큰 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맞아요.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