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에 페인트칠 하기, 지자체의 '국제결혼 지원제도'

in #kr7 years ago (edited)

어떤 문제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 문제의 특징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구조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고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주어진 예산은 쥐꼬리 위의 먼지 정도 될까 말까하고, 쓸 수 있는 자원은 없어요. 그런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쪼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경험에 의하면 일반적인 회사 조직을 다니는 직장인들은 이런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른 회사를 찾죠. 그리고 다른 회사 입사가 결정되면 미련없이 사표내고 이직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직장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한민국엔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 좀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구감소죠. 이미 대한민국의 상당수 지자체들은 인구절벽 상태입니다.

지자체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선 자기 지역의 인구절벽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직장은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빡센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이죠. 지역민들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4년만에 짤리는 분이 그 직장의 사장님이니까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때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못 만들어내면 모시는 사장님 짤리고 다른 사장님이 오십니다. 사장이 짤리는 상황이니 사장이 직원들에게 집어넣는 압력은 일반적인 직장보다 더 클 수 밖에 없지요. 지자체에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좀 깨는 방안들이 나오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입니다.

겨울에 산을 파랗게 만들라는 요구를 받으면 보리를 갖다 심든, 페인트로 칠하든, 그 요구를 해결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말이 꽤 많이 나오는 “미혼 남성 국제결혼 지원제도”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사업입니다.

1485996788ADD_thumb580.jpg
이미지 출처 인터넷함양신문 http://www.hy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7&idx=37009

사실 꽤 오래전부터 많은 분들이 전국의 군 단위 지자체에서 벌이는 “미혼 남성 국제결혼 지원제도”를 문제삼아 왔습니다. 이 분들이 우려하는 것은 “안 그래도 한국 적응과 관련된 이슈들이 많은 것이 국제결혼인데, 나라가 나서서 여자를 수입하겠다고 하다니”죠. 뭐 작년 말엔 농정신문에 이런 글도 실렸었어요.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2496)

많은 군 단위의 지자체에선 농촌 남자 한 사람당 300~600만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농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사업이라는 것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몇 가지 선입견관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의 저 글에 깔려 있는 것은 순진한 제3세계 여성들을 돈으로 꼬여다가 결혼하고 책임지지 않는 한국 남자들에 대한 분노죠. 그리고 그걸 지자체가 지원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참을 수 없는거고.

이거, 중대한 오해가 좀 깔려 있습니다.

제3세계 여성들은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좋아하지, 한국남자에 대한 좋은 인상 같은거 없습니다. 박정희 시절에 베트남에 파병한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많지만, 지금의 베트남 사람들은 그거와는 다른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베트남에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말도 안되는 처우(심지어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는 이야기도 하는게 대한민국이지요), 그리고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일상적 모욕과 폭력 때문에 한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80d237fc812f476d8773409d9ff36c94)

수 십년 전의 일은 미안해하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입 닦는 사람들로 비춰지고 있는거죠.

이게 베트남만 그런게 아닙니다. 네팔엔 한국인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운동을 벌이는 여성 NGO가 한 두개가 아닙니다. 거기다 네팔의 스타트업(?) 언론사(a.k.a. 바이럴 업체)들이 가장 많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방식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말도 안되는 처우를 받는다고 과장하는 기사들을 써서 바이럴로 뿌리는 겁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으로 퍼지는 바이럴들을 찾아보면 한국에 와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1년 급여의 총액에 맞먹는 임금 체불이 있다는 이야기(물론 뻥입니다), 혹은 이유 없이 폭행당하는 네팔인 동영상(한국말은 나오지도 않고 확실히 패는 것 같지도 않아요) 같은 가짜뉴스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이게 먹히는 이유? 확증편향을 확대시킬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뭐 같은 경험을 했다는 증언이 있으니 이런 가짜뉴스가 판을 칩니다.

그래서 현지의 결혼중개업체들이 한국인과 결혼할 여성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지 좀 됩니다.

무엇보다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늙은 남자들만 많은 무척이나 큰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

상당기간동안 1가구 1자녀 정책을 펼쳤던 중국은 한국보다 여자가 더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성감별 당하고 여자아이인 경우엔 가차없이 낙태했던지라 중국의 성비는 한국보다 몇 배로 안 좋죠. 그리고 중국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처럼 많이 가부장적이지도 않아요.

그래서 결혼 이주를 고려하는 여성들의 경우, 한국보단 중국으로 가겠다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거기다 2014년부터 한국어 시험(TOPIK) 2급을 통과하거나 부부가 1년 이상 현지에서 같이 있으면서 공용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결혼비자 자체가 안나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한때 3만4천명 가량 한국으로 입국하던 결혼이주여성들이 계속 줄어들어 2016년 들어선 2만591명선으로 떨어졌습니다. 1/3이 줄어든 거죠. (참고자료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430)

언어 능력을 증명하라는 서류 하나로 한국에 입국하는 결혼이주여성이 1/3이나 줄어든 이유는 현지에서 한국어를 TOPIK 2급 수준으로 공부하는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지의 한국어 학원 강사들은 한국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들에요. 공장에서 일하던 분들이 능숙한 한국어 교육 능력을 갖추고 있을리가... 없지요?

현지에서 한국어 배울 수 있느 방법은 본인이 뭘 가르치는지 잘 모르는 선생님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배울 수 있는 학원 대부분은 대도시에만 있습니다. 세종학당 이야기 하시는 분들 꽤 많은데, 거긴 그 나라의 수도에만 있습니다. KOICA 프렌즈 단원들이 시골로 좀 들어가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제한적입니다.

여튼, 한국의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에 오려는 분들은 친인척 없는 대도시에 나와서 최소 6개월에서 1~2년 한국어를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아무리 물가 싼 나라라고 하더라도 만만찮은 경비가 들어갑니다. 한국돈으로 300~600만원은 훌쩍 넘어갑니다.

즉, 지자체들에서 벌이는 “미혼 남성 국제결혼 지원제도”, 사실 사업성 0입니다.

그럼 이게 사업성이 없다는걸 관련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이 모르고 있을까요? 무슨 말씀을요. 그들이 가장 잘 알죠. 애초에 저 사업을 벌이고 있는 지자체들은 인구감소가 심해서 인구 절벽 상태에 다다른 곳들 입니다.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이 떠나서 그런 것이고, 젊은이들이 떠났다는 것은 먹고 살 거리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저런 지역들의 경우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됩니다. 학교들은 폐교한지 오래고 가까운 산부인과는 도 경계선을 넘어가야 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야 인구절벽을 막을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일개 군 예산으로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그들을 욕할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요구받았던 것이 불가능한 미션이잖아요. 하지만 군수님 재선되시려면 뭔가는 보여줘야 하는 거죠. 겨울에 민둥산을 파랗게 만들라고 했으니 별 수 있나요. 페인트로라도 칠해야지.

그러니까 사업성이 없음에도 이걸 추진했던 이유는 ‘순전히 뭔가 보여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이게 논쟁의 대상이 되면 사실 가장 좋아하는 분들은 이 말도 안되는 사업을 추진했던 분들입니다.

뭐든지 하라고, 맘에 안들면 사장 바꿔버린다고 압력을 행사하는 분들에게 “저희가 어렵게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들이 이걸 적극적으로 반대하네요...”라면서 항의전화 녹음한 것 몇 가지 틀어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압력을 행사하시던 으르신들이 꼭지 돌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분들의 분노가 “농촌을 말려죽이려는 도시것들”에게 향하지 않을까요?

Sort:  

현재로선 정말 깜깜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환경이나 정치 같은 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환상이라도 가질 수 있지만 인구 감소와 저출산은? 그리고 이것이 그냥 시대의 흐름이고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들이 잔뜩 생겨날 운명이라면 그 사이의 진통은..?

여자가 일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저출산 자체를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죠. 그런데 여자가 사회활동하기 어려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뭘 어떻게 한다고 하니까 일이 될리가 없구요...

헉!!! 그알싫 팬입니다 +_+ 물론 재난편도 정주행했구요 ㅋㅋ 스티밋에 계신걸 이제야 알았다니!! 반갑습니다!!

헉;;; 부담 만배;;; 여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