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학개론 - The third piece of cheese : powder 3. (마지막 편) @Redsign

in #kr7 years ago


The Third Piece Of Cheese
"너를 포기하려는 그 찰나에 너는 갑자기 피어난 벚꽃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게 사랑을 피우며 나를 잡아 세웠다."


Powder 3.

밤이 저물어 갔다. 부평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덜컹덜컹 흔들리며 밤을 가르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해 문에 기대어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네온사인이 밤에 휩싸여 발광하듯 번쩍였다. 반딧불이가 빛을 내 듯, 가짜 태양에 나방이 몰려들 듯. 꼴이 우스워 한숨을 내뱉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우스웠다.

‘어쩌자고 걔를 거기서 잡아 세웠을까...!’

미치겠다는 생각에 머리칼을 헤집었다. 몇 대 때려볼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미친 뭐처럼 보일까 싶어 넘어갔다. 그놈의 마지막, 마지막을 되뇌던 나는 그놈의 마지막이란 이름의 미련에 마지막까지 삽질을 하고야 말았다. 귀가하는 셔틀버스에서 내려 나를 주안역 개찰구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려는 승희를 잡아 세웠다. 사람들을 조금 피해 선 자리에서, 할 얘기가 있다라고 하면서.

‘고백이라도 하려고 했던 거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욕지기가 목까지 차올랐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바보천치는 없을 것이었다. 미련 한 조각에 그렇게 애를 잡아 세웠으면 무라도 썰어야했을 것을. 사귀자는 말은 못해도 좋아한다고 멱살 잡고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을 것을. 멍청하게, 바보같이 얼어붙어선 얼굴만 빨갛게 붉힌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내 인생 최대의 굴욕이자 수모였다. 내 인생, 절대로 다시는 없을 최대의 뻘짓이었다.

“내일부터 학교 대체 어떻게 나가냐...”

한숨을 크게 푹 내쉬었다. 눈물이 날 법도 한데 마음만 울적하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불교처럼 애기하자면 약간 ‘해탈’을 한 것 같은, 도교처럼 얘기하자면 나는 방금 무위자연을 스스로 이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해가 잘 안된다고? 그럼 정말 가장 쉽게 말하자면,

“자퇴할까?”

이러한 상태다.

머리 속에 또 다른 내 자아가 있다면 걔는 지금 필시 비보잉 헤드스핀을 하고 머리를 헤비락 가수마냥 짤짤 미친 듯이 돌린 다음 데스메탈을 지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쑥대머리라도 불러야할까. 반쯤 정신이 미쳐있는 그 와중에 핸드폰이 울어댔다.

“아오 씨발 이 와중에 뭐야? 누구야?”

욕을 하며 주머니에서 꺼내니 영 반갑지 않은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최성준이었다. 마침 지하철이 부평역에 다다라 문이 열렸다.

‘내려야하나.’

순간 고민이 들었다. 길게 울리던 전화의 진동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온 듯 울어댔다. 지하철의 안내 목소리가 곧 문이 닫힐 것임을 알렸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부서졌다. 문 너머의 부평역이 눈 앞으로 보였다. 그 너머의 밤하늘이 유독 까맸다. 그간 보이지 않던 별이 꽤나 오랜만에 다시 보였다. 머릿속이 텅 비어 이 시끄러운 와중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오직 그 별만 보였다.

‘이대로 정말 포기할거야?’

머릿속에서 내게 묻고 있었다.

‘승희를 좋아하잖아.’

머리가 웅웅 울렸다. 지하철 안내 방송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모든 것이 내게서 훙 바람에 날려가듯 멀어졌다.

‘이대로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거야.’

핸드폰의 전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귀에 갖다댔다.

‘아무것도.’

“어, 성준아.”
“어디야, 누나?”
“미안.”
“응?”
“나 너 못 만날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
“미안해.”

전화를 끊었다.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지하철과 함께 거칠게 내달렸다. 핸드폰을 손에 꾹 쥐었다. 할 말이 있으면 메시지로라도 해달라고 했던 승희의 말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승희의 이름을 눌렀다. 승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카카오톡 방이 열렸다. 심장이 손가락 바로 끝에서 뛰고 있었다.

말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널 너무나도 좋아한다고. 승희 너를.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너를. 내 맘을 몰라도 좋고, 받아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래도 상관없으니 전하고 싶었다.

나 [승희야]
나 [좋아해.]
나 [널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나 [널 좋아해왔어.]

그러니까 들어줘. 내 마음을.


내일 이 시간 에필로그가 올라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