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김부선과의 통화... 위로와 공감

in #kr5 years ago (edited)

#2018년 6월19일 마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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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씨와 통화를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녀의 이름 석자가 인터넷 상에 떠다니는 걸 알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정치인들이 이번에도 또 그녀를 갖고 이런저런 장사를 해먹은 모양이다. 바른미래당? 너희들이 언제부터 여성인권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이렇게 또 한 사람이 겪은 불행한 일을 끄집어내어 선거에 이용해 먹나? 역겹다. 그녀에게 위로도 해줄 겸, 더이상 언론을 상대하지 말라고 충고도 해줄 겸 전화를 걸었다.

“허기자! 세상에. 내가 주변에서 허기자 소식 전해주면, 허기자가 절대 그런 거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운동 말고는 사생활도 없는 사람이라고 절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아시잖아요. 마약 할 사람과 안할 사람이 따로 없다는 거. 하하”

특유의 걸걸하고 유쾌한 목소리. 그러나 조금만 더 얘기를 이어가면 그녀는 돌변해 울곤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그럴 거다. 통화는 늘 그렇다. 이해하지만 피곤하다. 그래도 오늘은 좀 길게 얘기하자. 나도 이제는 중증 우울증 환자다. 그녀 못지 않다.

“그거 계속 생각나지?”
어떻게 알았을까. 역시. 중독자는 중독자의 고통을 알고 있다. 내가 요즘 놀라운 것 한가지는 마약 생각이 너무 간절하다는 거다. 내 스스로도 미쳤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해고된지 한달 됐는데 마약이 너무 하고 싶다니. 아니, 회사에서 해고되니 더욱 마약이 하고 싶은 걸까.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잖아. 이런 상태로 어떻게 평생을 살아가지? 김부선씨에게 무슨 노하우라도 전해듣고 싶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강렬하거든. 그거 한번 하고 싶어서 온 재산 다 갖다 바치게 되잖아.
난 그거 생각날 때마다 산에 갔어. 허기자 나랑 산에 같이 가요. 언제든 연락해. 그런데 그전에 허 기자도 반성해야 해. 그걸 어떻게든 참았어야지. 딸 때문에 간신히 참고 살았어. 애 낳고 이상해지면 안되니까.”

그녀는 자신 주변의 지인들이 어떻게 마약에 걸려 넘어졌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삶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 삶이 재미있어야 마약 따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중독자들이 왜 자꾸 또 마약을 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모른다. 만만치 않게 삶이 별로 재미없을텐데도 김부선씨는 참 오랜 세월 잘도 버텼구나.

“내가 왜 우울증에 빠져서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이제 허기자도 알거 같지?”
“네 그러네요.”

김부선씨에게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사회 운동이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다.

“너무 좋아. 나랑 같이 해. 너무 안타까워 재현씨. 그런거 가장 안할 거 같은 사람이...”

그래. 나는 그런거 할 사람이 아니지. 그런데 막상 하고나서보니, 그런거 할 사람과 그런거 안할 사람의 차이가 종이한장 차이였다. 나같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성실한 사람에게도 마약이 찾아온다. 김부선씨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제주도 출신의 빽하나 없는 신인여배우 주변에 몰려든 ‘나쁜 오빠’들이 그녀를 유혹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사교모임에 어울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나한테는 다이어트 약이라고 했거든. 나도 처음에는 몰랐어.”

그렇다. 다들 이렇게 시작된다. ‘태국 친구가 선물로 준 담배’라는 게 내가 접한 정보의 전부였다. 김부선씨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 이제는 내가 좀 위로받고 싶다. 만날 약속 날짜를 잡았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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