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엄마가 보고싶은데 집에 못들어가겠다
동화 '엄마의 품'의 그림.
#2018년 6월16일 마약일기
운동이라도 쉬면 안될 것 같아 웬만하면 헬스장을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 직장에서 해고되니 갑자기 매일 가야할 곳이 사라졌다. 마음 편하게 갈 곳은 헬스장뿐이다. 형식적으로라도 이곳 사람들은 내게 “어서오세요”라고 말해준다. 나는 그 말에 새삼 위안을 느낀다. 적어도, 이곳은 나를 환영해준다.
집에서 나와 헬스장으로 간다. 언덕 하나를 넘고 꽤 잘 지어진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과해서 15분 정도 걸어야 헬스장이 나온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는 나무를 곳곳에 심어 앞마당을 숲처럼 조성하는 곳들이 제법 있다. 특히 자동차까지 지하로 다니게 하니 길을 걷다보면 마치 공원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논다. 개들도 코를 킁킁대며 걷는다.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 어딘가서 밥먹으러 들어오라고 엄마가 소리칠 것만 같다.
엄마... 우리 엄마도 내가 밥먹으러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텐데. 집에 못들어가겠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가족의 얼굴을 보는게 힘들 거 같아서. 나 하나 잘 되는 것만 믿고 인생의 고단함을 견디며 악착같이 아들을 키워내셨는데. 내가 이렇게 망가지고 말았으니. 우리 부모님은 그럼에도 나를 태연하게 맞으시겠지만, 그걸 보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엄마...
나도 저렇게 아무 걱정없이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 난 분명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잘 살아왔건만 어쩌다 마약을 하고 최악의 쓰레기같은 존재가 되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따뜻하게 안아주던 엄마품에 기대고 싶다. ‘엄마.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살펴보는데, 민갑룡 경찰청 차장이 경찰청장에 지명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민갑룡씨가 경찰청장이 되는구나. 경찰청 출입기자인 내가 마약이나 하다니. 그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경찰 개혁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상의해가는 과정에서 민갑룡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는 분명 인재다. 특히 경찰의 집회 관리 방식은 크게 개선 될 거다. 그가 술자리에서 내게 미국 경찰의 집회관리 방식을 현지에서 관찰하고 연구해온 것들을 신나서 설명하던 게 떠오른다. 내가 그것 크게 보도해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이젠 못하게 생겼다.
평소같으면 당연히 민갑룡 차장에게 축하연락을 하겠지만, 이제는 하면 안된다. 나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연락하면 당연히 부적절하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친하게 지내는 경찰 간부에게 대신 전달해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OO 치안감님 잘 지내시지요. 민갑룡 차장님께 제가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지금은 연락 드릴 입장이 안되어 연락 못드린다고 말씀좀 건네주십시오. 제 재판이 끝나면 시민권도 제대로 확보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길을 다시 걷겠습니다. 그 때 찾아뵙겠습니다.”
과연 내게 답장이 올까. 이 경찰마저도 나를 외면하면 나는 정말 슬플 것 같은데. 이런 처지가 되면 가장 두려운 게 기존에 맺고 있던 관계들이 절단 나는 것이다. 마약 중독 따위는 사실 내게 큰 고통도 아니다. 내 모든 삶이 절단 나버린게 더 큰 고통이다. 내 고통스런 심경이 전달된 것일까. 10분만에 답장이 왔다.
“꼭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지요. 기계가 아닌 인간이니까요. 사람들은 그걸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수가 있는데 사실은 운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빨리 원기회복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연락주시면 언제든 기꺼이 반기겠습니다. 전화위복을 되새기며 힘내십시오.”
가슴이 울컥한다. 고개를 숙여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는데, 내 앞으로 툭 하고 공이 하나 날아온다. 공을 다시 발로 차줄까 하다가, 손으로 집어들었다. 당황해 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수줍게 말했다. “괜찮아. 아저씨 하나도 안다쳤어. 누구를 다치게 한게 아니면 괜찮은거야.”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니, 내게 하는 말일까.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저에게 "응원한다"고 문자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송구하고 고맙습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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