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에 담긴 역사

in #kr5 years ago

작년 오늘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 이이화 선생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불우한 형편에 제대로 공부할 수도 없었지만 군밤장수부터 술집 웨이터까지 별별 일을 다 하시면서 독학으로 역사를 공부하셨고, 재야 역사학자라 불렸지만 환단고기나 “위대한 상고사” 타령하는 사람들과는 굵은 선을 그으셨던 그분의 한 마디가 와 닿습니다. “사실을 미화하거나 호도한다고 하여 그 실상이 묻히는 것은 아니며,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바른 역사가 성립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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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쉽지 않은 일은 뭔가를 바라보고 판단할 때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꾸미고 싶은 욕망을 이겨낸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일일 겁니다. 개인사(個人史)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3월 18일 있었던 몇 가지 일들입니다.

1250년 3월 18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스스로 예루살렘 왕국의 왕임을 선언합니다.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가 “왕좌에 앉았던 왕들 중 최초의 근대인”이라 불렀던 프리드리히 2세는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독일어 이탈리아 어 심지어 아랍어까지 능통했던 교양인이었습니다. 십자군을 이끌고 온 그는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 알 카민과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예루살렘, 베들레헴은 신성로마제국에 양도되나 이슬람 성지인 바위의 돔은 이슬람의 것으로 남고,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신도들의 예배를 존중할 것을 약속하고 공격하지도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 냅니다. .

예루살렘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고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퍼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잔이 들리지 않자 프리드리히 2세는 이유를 묻습니다. “(기독교인인) 왕께 예의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는 답이 돌아오자 프리드리히 2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잔을 들으러 여기 왔다네.“ 그리고 이슬람 영역으로 남기기로 한 바위 돔 사원에 기독교 성직자가 들어오자 호통을 칩니다. ”나가라. 여기는 그대가 올 곳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2세도 중세인으로서의 한계는 분명히 지니고 있었습니다만 일본이 예수를 믿지 않아 쓰나미가 닥쳤다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즐비하고 거기에 아멘 부르짖는 한국의 중세인들보다는 훨씬 근대화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1858년 오늘 독일의 발명가 루돌프 디젤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디젤 엔진’의 발명가죠. 디젤은 무척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엔진 제작을 독점하지 않고 누구나 적정한 특허료를 내면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으니까요. 디젤은 영국 디젤 기관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러 탄 배에서 갑자기 사라집니다 자신의 방 안에 옷을 단정히 개 놓고서 증발해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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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유튜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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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2세 십자군원정사에서 가장 멋지게 기억에남은 왕이었죠. 떠밀려 전쟁하긴 했지만 두번이나 파문당한

맞습니다 ^^ 꽤.... 시간여행자스러운 왕이었습니다 시대와 불화한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