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후기 3 - 성벽과 바다 두브로브니크
성벽과 바다, 두브로브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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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해안길은 멀지만 지루하지 않았어. 아드리아 해의 푸른 바다와 백발을 머리에 인 듯 꼭대기에 석회석이 허옇게 드러난 크로아티아의 산들은 한 굽이마다 열 가지의 풍경으로 여행자들의 눈길을 낚아챘지. 그런데 난데없는 국경 통과를 한다는구나. 두브로브니크는 분명 크로아티아고 그리로 가는 길도 크로아티아인데 보스니아 영토가 툭 삐져나와 해안선을 차지하고 있는 거야. 88올림픽 도로로 치면 동호대교에서 영동대교까지만 다른 나라가 관할하는 셈이랄까. 과거 오스만 투르크에게 할양됐던 해안선이기도 하고 유고슬라비아 성립 이후 크로아티아 출신 티토가 내륙의 공화국이었던 보스니아를 배려하여 보스니아에게 허락한 결과라고 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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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니 보스니아니 헤아리고 있는데 가이드 아저씨가 또 마이크를 든다. “오른쪽에 길게 드리워진 섬 보이시죠? 코르출라 섬입니다. 여기서 유명한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마르코 폴로죠. 베네치아 사람이죠? 하지만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곳 아드리아 해 연안 대부분을 장악했었거든요.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그래서 마르코 폴로를 크로아티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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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코웃음이 나면서 역사 속에서 어디까지가 누구 땅이고 누가 어디 출신인지를 묻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하냐 인간들 참.... 하며 힐난을 하다가 금새 입이 다물어진다. 그거 따지는 건 코리언만큼 대단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입양아 출신 프랑스 장관에게 혹여 ‘한국인’으로서의 흔적을 캐다가 “나는 뼈 속까지 프랑스인”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어야 했던 한국 언론의 기억이 떠올라서 얼굴까지 벌개지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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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폴로가 크로아티아 태생이라면 그 아버지와 함께 ‘동방’을 향해 나아갔던 이유를 더욱 가늠할 만 해. 그에게 몽골은 결코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을 테니까. 당시 동유럽을 호령하던 강대국이었던 헝가리가 칭기즈칸의 장손자 바투와 명장 수부테이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박살났던 게 마르코폴로가 태어나기 12년 전인 1242년이었고 그 후 몽골군들은 발칸 반도 일대에서 결코 낯선 황인종이 아니었을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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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마침내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조차 신비로웠는데 버스에서 작은 밴으로 바꿔 타고 위태로워 보이는 고갯길을 털털거리고 올라 스르지라는 산꼭대기의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또 한 번 아빠의 동공은 확대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도시가 남아 있구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도시 킹스랜덤의 촬영 배경이 되었다고 얘기를 들었고 사진으로도 여러 번 봤지만 막상 실제 내 눈을 통해 내려다본 도시를 보니 문득 로시난테라도 타고 마분지 갑옷이라도 입고 도시로 입성하고 싶어지더구나. “지구상에서 낙원을 찾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는 버나드 쇼의 말이 절절하게 이해가 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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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분명한 건 오랫 동안 ‘라구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도시가 특정한 나라의 영토로서보다 이 지역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공화국으로서 오랫 동안 살아 왔다는 거야. 뭐랄까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자면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던’ 도시랄까. 도시가 세워진 뒤 사라센 제국, 베네치아, 헝가리, 오스만 투르크, 합스부르크, 프랑스, 심지어 영국까지 동지중해 일대에서 힘깨나 쓴 거의 모두가 골고루 이 땅에 발을 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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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적에게는 불굴의 투지로 저항했으며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압박에는 굴복하여그 지배를 받기도 했지만 독립과 자치의 끈을 놓지 않았고, 베네치아와 오스만 투르크처럼 앙숙이었던 두 나라 모두에게 “우리는 님들의 신하예요.”라고 설레발을 치면서 형식적 지배권을 주되 내용상 자치를 끊임없이 지향했던 곳이야. 이 공화국의 건국 이념을 보면 왜 이토록 튼튼한 요새가 지어졌는지, 수백년 간 그 요새가 강화돼 왔는지를 알 수 있어.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전 세계의 모든 금을 주더라도 자유와는 맞바꾸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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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 오른다. 수도 없는 적들이 이 성벽을 두들겼을 거야. 아마도 그 흔적을 가장 강하게 남긴 적이라면 십자군을 수송하면서 그 비용을 받지 못하자 그 댓가로 비잔틴 제국과 라구사(두브로브니크)나 자다르를 비롯한 크로아티아 해안의 도시 국가들을 (같은 기독교 국가를!) 공략케 해서 이익을 챙겼던 베네치아일 것 같다. 성 안 곳곳에서는 날개 달린 사자 문양이 보인다. 150년 동안 이곳을 지배했던 베네치아의 상징이지. 라구사 사람들은 그 모두를 그대로 놓아 뒀다. 여러 번 덧쌓은 성벽은 역사의 지층처럼 쌓였고 도시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수백 세대 사람들의 삶의 변함없는 터전으로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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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성벽 바로 앞에는 지중해 태양에 바싹 말라가는 빨래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고 바다를 향한 옛 대포 뒤에는 수백년 묵은 집 마당에 농구장에 아이들의 외침이 싱그러웠다. 기사들이 성호를 그으며 무릎을 꿇고 있을 것 같은 대성당에는 형형색색의 관광객들이 와글거리고 , 들고양이들은 따사로운 햇볕 받으며 골목 돌계단 위에서 곤히 잠든다. 사람 그림자만 봐도 도망가 버리는 한국의 들냥이들과는 전혀 다른 여유. 근 천 년 동안 지킬 것은 지키되 내줄 것은 내주고 강자에 지배당하되 스스로를 잃지는 않았던 라구사, 두브로브니크의 고양이다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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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브로브니크는 유고 내전 때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의 저항의 상징이 됐고 세르비아 군의 맹공격을 받아. 도시를 내려다보는 스르지 산에 구축된 요새의 방벽은 여기저기 대포 자국이 지금도 선연하고 오래된 성벽 도시에도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지.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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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성들이 이 역사적인 도시 두브로브니크를 지키기 위해 몰려든 거야. 프랑스 학술원장 장 도르메송 등은 “유럽의 문명과 예술의 상징이 사라지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고 부르짖으며 두브로브니크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폭격을 막았어. 인간 방패를 자임했던 거지. 그런 노력을 통해 이 매혹적인 성벽 도시는 큰 파괴 없이 지켜졌고 오늘도 아빠 앞에 우람하게 서 있게 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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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은 지 그리 오래지 않아서인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는 당시를 회상하는 상징물들이 많이 보였고 6.25 이후 많이 보였던 ‘상이 용사’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어. 길거리에서 노래하던 한 악사의 성량이 너무 풍부하고 좋아서 한참을 들었다. 크로아티아의 한 주이자 과거 로마의 속주 이름이기도 한 달마티아의 ‘민중의 노래’라고 아빠에게 알려 주더구나. 그 힘찬 음성을 한 번 들어 보기 바란다. 어렴풋하게라도 느낄 수 있을 거야.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겪었던 고난, 그리고 그들이 이겨냈던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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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보르니크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에요.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책과 동물을 사랑하는 @Heeingu 입니다.
스팀잇을 배워가며 즐거운 스팀잇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앞으로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찾아뵙겠습니다
크로아티아 역사는 처음 들어보네요.^^ 축구도 이겼으면 좋겠다.
ㅎㅎ 그 때문에 이포스팅 올린 겁니다, 크로아티아 화이팅
크로아티아 여행하신분들이 종종 눈에 띄는거같아요.
아마 크로아티아 여행하신분들은 5%도 안될거같은데.. 아님 은근 많을까요 ?
이왕 이쁜 크로아티아 사진 본김에 월드컵도 크로아티아가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꽃보다 누나 이후에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폴란드 헝가리가 덕분에 찬밥이 됐구요
역시 방송의 힘
근데 너무 멋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