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일 그리고 윤봉길 사이드 스토리

in #kr5 years ago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의 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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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라는 명제는 제게 매우 소중합니다. 루즈벨트가 말한 4대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기아로부터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서 으뜸은 역시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고 보거니와 이에 대해 태클이 걸리기 시작하면 다른 자유는 말할 틈도 없이 사그라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내가 불쾌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때 비로소 유의미해지는 것이며, 허위 사실이나 악의적인 의도로 사람의 인격을 해치는 표현이 아닌 한, 보장돼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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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열렬한 사형제 폐지론자도 극악한 살인마를 만나면 저 자식 죽여 버려! 하며 이를 뿌드득 갈아붙일 수 있듯, 제게도 표현의 자유의 영역을 넘어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이들이 간간히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윤서인 같은 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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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옹호까지는 봐 줄 수 있습니다. 친일파의 범위와 윤곽이 애매한 부분이 있고, 무시할망정 지껄일 자유까지는 인정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자가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산 사람들” 따위의 말을 할 때는 정말 참아주기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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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여론의 죽일듯한 포화 속에 사회적 생매장은 경험해야 한다는 독기가 머금어졌던 겁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또 걸인이건 귀인이건 건드리면 안되는 역린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역린은 약점일 수 있고, 결코 훼손돼서는 안되며 훼손시킬 수 없는 가치일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린은 독립운동과 그에 몸바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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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일입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세계 열강의 암묵적인 지원까지 얻은 나라의 지배가 현실화된 마당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조금 덩치 큰 오키나와가 돼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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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굶겨죽이고 자기 몸 아까운 줄 모르고 독립운동에 자신을 갈아넣은 선구자들, 하다못해 일본에게 작은 반항이라도 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해방 같은 것 없었습니다. 원자폭탄이 두 개가 아니라 백 개가 떨어진들 일본의 항복이 우리의 독립과 연결될 일이 없었고, 자칫하면 우리 땅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졌을지도 모르죠. 흥남이나 수풍 같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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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이라고 해서 “독립운동을 하면 독립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가망 없는 것 알았고 생전에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했고, 도무지 ‘타산성’이 없는 일이란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자기 뿐 아니라 자식들까지 일가친척들까지 망칠 수 있음을 절절히 알고 있었고, 독립운동한다고 존경은 커녕, 당대에나 후대에나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하며 비웃음을 살 수도 있음을 넉넉히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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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목숨과 일신을 걸었습니다. 민주화운동도 숭고했지만 독립운동가들에 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6.25 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도 기려야 하지만 그때는 나라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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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가망이 적은 일, 안되는 일, 해 봐야 피만 볼 일을 그래도 해야 한다고 뛰어들고 꿈을 꾸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폄하한다면 그게 될 일이겠습니까 . 길 닦아 놓으니 뭐가 지나간다고 윤서인 같은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게 애석할 뿐이죠. 그 개 막자고 길을 다시 뒤집을 수도 없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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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역사를 바꾼 폭탄을 던진 날입니다. 폭탄은 그날 터진 것만으로 남지 않고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고 문 닫은 일본인 모두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윤봉길의 폭탄 세례로 몸 한 조각을 날려야 했던 사람들이지요. 이 이야기를 유튜브에 담아 봤습니다. 윤봉길 사이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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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재판 중 발언을 가져와 봅니다. 윤봉길 의사도 자신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희망이 없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는 길 위를 덮칠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빛을 내며 걸어갔습니다. 그 빛들이 뭉쳐 오늘 우리는 광명천지에 살고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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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본에 반항하여 독립함은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강국피폐(强國疲弊)의 시기가 도래하면 그때야말로 조선은 독립하고야 말 것이다. 현재의 강국도 나뭇잎과 같이 자연 조락의 시기가 꼭 온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의 일로서 우리들 독립운동자는 국가성쇠의 순환을 앞당기는 것으로써 그 역할로 삼는다.

물론 한두 명의 상급 군인을 살해하는 것만으로는 독립이 용이하게 실행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사건 같은 것도 독립에는 당장 직접 효과가 없음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오직 기약하는 바는 이에 의하여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료히 알게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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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김홍일 장군이 뒤에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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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