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아 뭐해, 마음만 더 아프게.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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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열 살이었다.

상실 - 그런 단어가 있다는 걸 배우기도 전에 느껴버리기엔 너무 어린 나이 아니었나. 지금 돌아보니, 너무 어렸는데. 나는 내가 다컸다고 생각했었다. 모두가 그랬으니까. '다 컸네'

우리 수지, 다 컸네.

통곡을 하고 오열을 하느라 퉁퉁 부어 눈이 벌건 어른들 앞에서 -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수준으로 - 어른스럽게 행동해야했고 나는 정작 내 나이답게, 아이답게 울 수도 없었다. 그 때의 것들이 지금 이렇게 넘치고 있는 걸까.

퇴행.


캔디나 하니가 되고 싶진 않았지만 운명이라느니 불행이라느니 그딴 것에 심취한 비극의 여주인공 놀이를 하긴 더더욱 싫었다. 세상에 나만 슬프고 아픈 것도 아닌데, 모두가 힘든데, 라는 말로 나의 아픔과 슬픔을 계속 외면했다. 이 플로우 -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란 스트림, 원하지 않아도 자꾸만 떠밀려 흘러가게 되는 유수풀같은 인생의 흐름.
빠져나오고 싶었다. 외면하는 것으로 도피할 수 있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척 하면 잊게 되길. 잊은 척 하면 없던 게 되길.


넌 내가 가진 슬픔에 대해 물었고, 나는 대답했지.

'나의 상처가 이윽고 아물어 괜찮아지면, 그때 아무일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덤덤하게 얘기해줄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괜찮아지면 얘기해줄게.
라는 말은
아니,
애초에 틀렸다.
머잖아 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도 결국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오열하며, 20년이 지났는데도 그 사건 한 복판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네게 고통을 토했다.
상처는 이윽고 아물지 않고, 여전히 대수롭다.


'꿈을 꿨어. 어떻게 그토록 오랜시간을 잊고 지냈는데 이렇게 무심하게 나타나서는, 얼굴도 안보여주고 등만 보여주다 멀어질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이 안나는데. 한번은 뒤돌아봐주지. 꿈에서나마 좀 보여주지.'

몇 년 전인가. 잠에서 깨 오열하던 내게 너는 그저 아무말 없이 노래를 불러줬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가장 좋아하던 트랙.


3일 전.
빨래방에서 빨래를 기다리며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아이의 글을 읽었다.
오만데 이입하고 다니면 정신적으로 힘들고 피곤해서 이젠 감정이 메마를 법도 한데
순간 뭐가 울컥했는지 눈물이 터져나오려는 바람에 읽기를 멈추고 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그 순간은 돌이켜봐도 참 드라마틱했지.
뭐라뭐라 의미없이 흐르던 빨래방 라디오에서 신청곡이 시작될 줄이야.
그 노래를
빨래방에서 듣게될 줄이야.
.
.
.
.
.
.
.
.
.
'사실은 그래, 흩어지는데
붙잡아 뭐해. 마음만 더 아프게.
근데 이렇게 살아지는게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해.'

ㅡ 넬 - 그리고, 남겨진 것들


네가 내게 노래해주던 그 날, 또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순간 그 꿈이 떠오른다. 당신의 뒷모습,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닿지 않는 손, 한번을 돌아봐주지 않고 멀어지던 당신의 작은 등. 멀어진 시간만큼 내가 잊고 지낸건지, 깨고 나서도 얼굴이 한참 기억이 안나 더 서러웠던 꿈이.
무슨 이런 타이밍이, 이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생각이 나서 이렇게 연결 짓고 의미부여 하는건데. 잊어야 할 일은 잊지 좀.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생각들을 퍽퍽하게 눌러밟으며 건조가 끝난 빨래 더미를 들고 돌아왔다.


2일 전.
전화기 너머로 넘실거리던 슬픔이 이윽고 넘쳐 흘러와 나를 덮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올 수 있으면 와.
모든 것들이 복선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그 단어, 그 단어와 관련된 시간, 그 단어와 관련된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나의 마음과 나의 멘탈과, 나를, 나의 - 온갖 것들을 뒤엎어버린다.

엄마.

엄마란 단어는.
엄마와 관련된 시간은,
엄마와 관련된 사람들은.


고작 열 살이었다. 아빠는 날 엄마의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빠는 1년 만에 재혼했고, 엄마 얘길 꺼내는 걸 싫어했다. 마지막 인사조차 못하고 떠나보낸 엄마. 그렇게 생이별해버린 외가쪽 식구들.
그들을 20년 만에 만났다.
삼촌은 빈소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았다.
만났던 시간보다 더 오래 만나지 못했던 내 가족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친엄마의 이름을 들었다.


슬픔을 먹고 자란 사람처럼 내 뼈에 살점에 슬픔이 들러붙어있다. 떼어낼 수도 없게. 덕지덕지.
1년 365일 슬픈 건 아니다. 사실 잊고 사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부르기에도 뭔가 어색한 직계가족 경조사연차를 내고 새벽부터 발인에 참석했다. 20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라도 가족이기에 당연히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남인걸까.
고맙단 말 한마디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다.
내가 느꼈던 그리움, 반가움, 애틋함, 슬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감정이
피로해졌다.

알고있을까, 그날 그 전화를 받자마자 3일치의 각오를 하고 빈소에 갔다는 걸.
그러나 나를 향한 낯선 손님 대우에 머쓱해져 몇 시간을 못 채우고
'발인날 다시 올게요.' 라는 말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제는 말라 비틀어져 없어진 줄 알았던 슬픔이 까꿍 고개를 내밀고, 그 천진한 슬픔을 마주하는 일은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고개를 떨군다. 내 발목에 운명이 묶어놓은 길고 무거운 쇠사슬이 보인다.
무겁다. 나아갈 수가 없다.
무려 몇 년동안 내 프로필의 타이틀이었던 말, '나아가자'
깨닫는다. 나는,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다.


넬 - 그리고, 남겨진 것들

사실은 그래, 흩어지는데
붙잡아 뭐해. 마음만 더 아프게.
근데 이렇게 살아지는게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해.

(*2017/10/17에 쓰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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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말이 더 섭섭하게 들리는 순간'이 상상되네요.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울컥 올라오는 순간들도요. 천천히 희석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인가봅니다 :) 소중한 댓글 감사드려요!

별 생각 없이 클릭했다가 저도 모르게 몰입해서 읽고 말았습니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겠지만, 저에게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과 기억이 있어서요. 한때 제 마음을 많이 울렸던 넬 노래 가사에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까지 더해지니 쉽게 헤어나오지를 못하겠네요.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참 좋았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기억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지셨기를 :) 좋게 읽어주시고 또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누구에도 쉽게 내보일 수 없는 슬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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