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18)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낸 이유(욥기 35장)

in #kr14 days ago

엘리후의 등장은 욥기를 더욱 해석하기 어렵게 함.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깨닫기 위해 더 많은 묵상과 노력을 들이게 됨.

엘리후도 35장에서는 세 친구들과 다를바 없이 욥을 정죄하고 공격하게 됨. 욥에게 회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욥이 죄지었음을 전제함.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시므로 욥의 행동과 의는 하나님 앞에서 무력한 의라고 주장함. 학대와 억압은 신실한 노래가 되지 못하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며, 욥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음. 욥의 입에서 나온 불평과 불만의 말이 욥의 실패의 증거라고 엘리후가 주장하고 있음. 아이러니하게도 욥기의 말미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기도에 대해 의롭다고 함. 하나님 앞에 머무르며 했던 기도였기 때문임. 하나님께서는 욥기의 1장부터 끝까지 달려나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욥을 지켜보시고 계셨음.

엘리후가 욥을 정죄했던 이유는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무익하고 무력하다고 하며 욥을 정죄함. 세상사람들도 가질만한 의라고 함. 그러면서 엘리후는 욥을 실패한 죄인으로 바라보고 있음. 엘리후는 욥에 대한 이해가 없었음. 신앙은 수학공식이 아님. 세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 함정에 빠져있음. 엘리후가 고백하는 신학에서는 미슈파트는 존재하지만 체다카는 찾아볼 수 없음을 알 수 있음. 미슈파트, 미스터 율법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 긍휼의 의가 우리를 구원에 이끄는 것임. 그 당시 인과응보적 신앙과 율법적 신앙이 고등적 신앙관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미슈파트 차가운 칼날 뿐만 아니라 체다카 사랑의 열정이 있으신 분임.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관심도 없고 그의 말도 듣지않고 버리시는 분이라고 말함.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신 분임. 예수님과 사역과는 정반대됨. 예수님은 죄인, 실패한 자들을 위해 오셨다고 하셨음. 엘리후는 인간을 정죄하며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지만 거기까지임. 하나님은 세 친구와 엘리후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끝이 아니라 더 크고 광대하신 분임. 욥기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광대하시고 신비하신 분이신지 알게 됨.

하나님과 욥의 마음이 기도로 연결되어 있었고, 오히려 엘리후는 하나님으로부터 정죄와 책망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침묵의 대상이 되었음.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으며, 간절히 사랑하고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음. 하나님은 결국 38장에서 욥에게 찾아오셨음. 그 자리에는 세 친구와 교만한 자의 기도는 듣지 않는다고 말했던 엘리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만 말씀하심.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를 치신다고 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불의한 자를 구하러 오셨음.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서 12:15) 말씀은 욥기를 관통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함. 복음의 능력으로 같이 웃고 같이 울라고 하는 뜻임. 다른 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로 대해야 함.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저멀리 있는 분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언제나 나의 곁에서 긍휼과 사랑의 눈으로 구원과 축복을 주시기 위해 바라보고 있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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