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년 전으로 타임슬립하다' [멜번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Victoria)]
- 멜번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
[State Library of Victoria : 328 Swanstone St. Melbourne]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건물 4층 높이의 까마득한 천장과 정 팔각형 지붕은 파란 하늘을 가득 담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 책상과 삐그덕 대는 나무 의자, 그리고 자리마다 은은한 조명이 책상을 비춘다.
책상 한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있길래 손가락을 넣었다. 고리를 당겨 올렸더니 근사한 독서대가 나타났다. 나무틀에 검은색 빛바랜 가죽을 입힌 독서대. 도서관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이 많은 독서대다.
[An old book stand made of wood]
괜히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책을 올려놓고 종이를 넘겨본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늘 내가 앉은 좌석에는 Glen Tomaseti(21. 5. 1929 - 25. 6. 2003) 라는 이름의 명패가 붙어있다. 그는 뮤지션이었고, 역사가였고, 페미니스트였고, 시인이었다.
지칭하는 말들이 굵직굵직하다.
뮤지션도 대단하고,
역사가도 대단하고,
페미니스트도 대단하고,
시인도 대단한데,
모든 수식어들이 오직 한 사람 이름 앞에 붙었다.
꽤 멋진 사람이었나 보다.
[A donor's nameplate on some seats]
좌석 곳곳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명패가 붙어있다.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이름과 한 사람의 일생을 축약하는 단어들이 함께 적혀있다. 문득 사는 것은 '순례'와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죽기 전에 명패를 남긴다면 내 이름 앞엔 어떤 단어들이 적혀있을까.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축약된 인생을 작은 명패를 보며 어렴풋이 상상해본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과거, 걸어갈 미래 그리고 현재,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이곳에 앉아 책을 볼 때마다 나는 과거의 시간이 현재까지 흐르고 있는 그 한가운데 놓여있는 기분이 든다. 그냥 도서관에 앉아있을 뿐인데, 마치 오래된 박물관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Artistic domed ceiling in the library ]
멜번에 처음 오고 ‘과거’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낡은 역사 앞에 100년이 넘은 성당이 오롯이 서있고, 성당 뒤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고층 빌딩이 서 있다. ‘과거와 현재’가 시공간을 초월해 공존하는 모습. 아주 잘 섞였다. 그래서 부럽다.
[The St paul's cathedral in Melbourne]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내 한복판에 1852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62년을 이어온 도서관이다. 홈페이지에는 도네이션 카테고리가 있다. 좌석 곳곳에 붙어있던 명패도 도서관에 일정 금액 이상 기부한 사람들이고,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전시행사도 오랜 시간 간직해온 이야기들을 기꺼이 기부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옛 이야기를 보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진 그들만의 품격 있는 문화가 놀라웠다.
[The old beautiful stories by Victoria's exhibitions]
도서관을 좋아하던 우리는, 멜번에 도착한 첫 날에 이 도서관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때도 도서관 앞 잔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처럼 누워 있었다. 그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여전히 도서관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커다란 아치형 천장 아래 앉아,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받는 감동은 변함이 없다.
하루는 대학생처럼 낮부터 밤까지 책을 읽고,
하루는 100년이 넘은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하루는 도서관 꼭대기 층에 올라가 넋 놓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또 하루는 도서관 앞 잔디 위에 누워 버스킹을 감상하거나,
도서관 건물 앞에서 어린 아이 만한 체스로 게임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Playing chess in front of the library]
관광객이 붐비는 여행지에서 나만 일상처럼 하루를 보내는 기분은 마치 내가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행복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도서관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들른다면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에는 근처 대학교 학생들이 몰려와 대학교 시험기간의 도서관 풍경을 연출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하늘은 깜깜하고 도서관 안은 자리마다 비춘 은은한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쌓아올린 종이 더미와 씨름하며 레포트를 쓰는 학생들, 나처럼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고 감탄하는 여행자들, 책 한 권에 푹 빠져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
[The night view of State library of Victoria]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1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계속 물려주는
그들만의 노력 덕분 아닐까.
해가 져도
도서관 불빛은 여전히 밝다.
도서관을 찾은 무라카미 하루키
제가 좋아하는 하루키가 지난 달에 도서관에 왔었네요!
[기타 참고 링크]
도서관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 : Vision 2020
부부의 전쟁기와 러브스토리를 담은 컬렉션 : Walter & Helena Cass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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