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연민 (The Monarchy of Fear)』 을 읽고 , 두려움의 시대, 그리고 철학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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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었다. 원제는 The Monarchy of Fear인데, 직역하면 '두려움의 군주국' 정도가 된다. 우리말 제목인 타인에 대한 연민도 책의 결론을 잘 담고 있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사실 '연민'보다 '두려움'에 있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쓰였다. 당시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 특히 대학 사회에서는 그의 당선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혐오와 갈라치기, 극단적인 언어와 선동이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의 당선을 단순히 그의 선거 전략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전에도 여러 책에서 이야기했듯이, 미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교육과 입시마저 점점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다는 불안감 역시 커졌다. 이러한 구조적인 불안과 좌절이 결국 정치적 분노로 이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누스바움은 이러한 현상의 가장 근본에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경험하는 감정이며, 동시에 거의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다. 문제는 두려움이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쉽게 혐오와 비난으로 이어진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이민자가, 사회가 불안할 때는 소수자가,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는 다른 진영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두려움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적과 아군의 구도로 바꾸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숙의와 공존을 무너뜨린다.

누스바움이 말하는 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상대를 악마화하는 언어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나라가 달라도 인간이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누군가에게 특정한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위협하거나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로부터 차근차근 결론을 도출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검토하도록 만든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의 사고를 점검하게 하는 학문이다.

물론 철학만으로 정책을 만들 수는 없다. 현실의 정책은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 수많은 학문과 현실적인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철학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책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철학은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누스바움은 책의 마지막에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고, 앞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선택하고, 타인을 연민하며, 서로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이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다운 감정과 이성을 함께 붙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