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私)와 사(邪), 그리고 사(詐)

in #krcalligraphy25 days ago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 오늘은 ‘사’라는 한자를 초대했습니다.
맨 먼저 사사로울 사(私)를 모셔볼까요?

사와사섬.jpg

사사롭다는 이 표현도 심상찮죠? 벼 화(禾), 옆에 사사 사(厶)입니다. 음, 사가 계속 나오는 군요. 사사사사사……왠지 뱀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옛날옛적에 우주 어느 곳에 아아주 평화롭고 풍요로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거기는 모든 것이 풍성해서 니것 내것이 없이 공동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나라에는 벼 화(禾)라는 한자는 일찌감치 생겼습니다. 벼 화(禾)는 벼 이삭이 익어서 위가 구부러진 모습입니다. 세상에는 벼가 차고 넘쳤지요. 사람이 굳이 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벼가 자랐고 쑥쑥 잘 커서 다 익으면 볍씨 하나가 주먹만큼 컸습니다. 사람이 백명이 사는 마을에는 대략 300명이 먹을 만큼 충분히 자랐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죠? 어느 한 사람, 복코라는 이가 수확물인 볏단을 자기 집 마당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웃집 사람 을돌이가 물었죠.

“복코야! 그거 왜 쌓아? 저 밖에 천지삐까리로 많은 게 벼인데?”
“을돌아! 넌 생각이 너무 없어서 문제야. 지금이야 흔한 게 벼이지만 언젠가 흉년이 들면 어떡할래?”
“우리 마을이 천년이 넘었지만 흉년이라고는 든 적이 없었잖아?”
“그건 모르는 거야. 또 어떤 이가 이 벼를 자기 집 마당에 많이 갖다 놓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누군가는 가져갈 벼가 모자라겠지?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하니까 나도 쌓아 두는 거야.”
“그거 참 희한한 생각이긴 한데…혹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좀 나눠줄 거지?”
“그건 안될 말! 각자 자기 볏단은 따로 관리해야지. 니껀 니가 쌓아두렴.”

그리고 그 후 복코는 자기 마당에 쌓은 볏단 앞에 커다랗게 私(사)라는 기호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웃집 을돌이가 그게 뭐냐고 묻자 복코는 대답했습니다.

“벼 화(禾) 옆에 내 복코를 그려 둔 거야. 이 벼는 내 꺼라는 뜻이지 뭐.^^”

을돌이도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그 역시 볏단을 자기 마당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사(私)자를 붙여두었지요. 그들의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볏단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동작이 늦은 사람은 챙길 볏단이 모자라거나 없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서로 자기가 쌓은 볏단은 자기 개인의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유재산(私有財産)의 개념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나치게 많이 쌓아두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것을 사(奢)하다고 했으며 사치(奢侈)라는 단어로도 나타났습니다. 그 한자의 구성을 보면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후 점점 사람들의 인심은 야박하게 되어 남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사적(私的)으로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사심(私心)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이익을 리(利)라고 하는데 벼(禾)를 낫(刂)으로 잘라서 자기 것을 챙기고는 이익이다! 라며 기뻐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벼를 자르는 낫도 예리하지만 이익 앞에서는 사람들 마음도 날카로워졌으니 날카로울 리(利)라고도 합니다. 이제 사리(私利)가 나온 거죠?
사심에 구체적인 이익이 결부되자 그것은 광기로 벌겋게 타오르기 시작했죠. 즉 사심에 욕망이라는 감정이 연료로 더해지자 사욕(私慾)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사심, 그리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생기자 하늘의 신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심이 생긴 생명군체의 미래는 대부분 멸망-이라는 결과를 우주가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들은 그런 사심의 결과는 좋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곡물의 출산량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열에 두 명은 사욕(私慾)을 부린 것을 뉘우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열에 둘은 더욱 미친듯이 자기만 살자는 식의 사(私)재기를 해댔습니다. 그 외 열에 여섯은 분위기 따라 양쪽에 오락가락했으며 후세에 그런 이들을 수련계에서는 중근기(中根器), 학문계에서는 중사(中士)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두명의 현자와 두명의 사악과 여섯 명의 중사로 대략 늘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볏단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 평화롭던 마을에 말입니다. 성질을 부릴 때 이빨을 드러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의 깊은 속 이빨은 어금니 아(牙)를 쓰죠. 작은 욕심에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큰 욕심에는 어금니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뚝방(阜=阝)까지 쌓아가며 자기 것을 모으고 지켰는데 때로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기도 했습니다. 어금니 아(牙)+ 언덕 부(阜=阝)이 것이 사악할 사(邪)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사(邪)한 사람들, 또는 사악(邪惡)이라고 불렀습니다. 결국 사(私)가 사(邪)로 발전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사유물을 두고 남을 속이는 사람도 생겼는데 그걸 사기 칠 사(詐)라고 하며 사기(詐欺)라고 합니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그 역시 사적인 욕망이 끓고 있어서 당하는 것입니다. 그 생태계의 주파수가 딱 맞죠.

그런 과정에서 세상 곡물의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어 이제는 사람이 100이면 곡물은 200명이 먹을 정도만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고생고생해서 농사를 지은 결과가 그렇게 축소된 것입니다. 그래도 100명이 먹기엔 충분하지 않느냐 싶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못합니다. 사치(奢侈)한 존재들은 그 붙든 것을 나눌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또 둘은 사치하고 둘은 굶어 죽어가며 여섯은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산량을 줄이는 신들의 대책이 틀린 것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커다란 분기점이 오면 열에 두 현인은 위로 올라가고 열에 둘은 아래로 추락하며 여섯은 그 중간계를 유지 해 나가는 그런 시스템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오늘 사사 사(私)를 초대하여 별 이야길 다 하게 되는군요. 이만하렵니다. 저도 오늘 사적인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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