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논란에 관한 생각

in #kr-diaryyesterday

광복절 마케팅 인 것일까? 요즘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다시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라는 말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표현을 넘어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지만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인적·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 이후의 혼란과 한국전쟁,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기존의 인적 자원과 행정·군사 조직이 상당 부분 새로운 국가의 운영에 다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를 친일파라고 해야 하는가?

친일파의 기준은 무엇인가

‘친일파’를 일제에 협력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다시 ‘협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행정기관에서 일했던 공무원은 모두 친일파였을까? 경찰은? 의사는? 교사는? 철도 노동자는? 일제의 통치체제 안에서 생계를 유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여기에는 단순한 흑백논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식민지배는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충분히 주어진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식민 통치기구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협력을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 살았는가’와 ‘일제의 식민지배를 적극적으로 돕고 강화했는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 식민지 행정체계 안에서 일했던 사람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거나 전쟁과 수탈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사람을 똑같은 의미의 ‘친일파’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반대로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였다”는 이유만으로 적극적인 협력행위까지 모두 면죄부를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

결국 친일 문제는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행위와 그 정도, 그리고 당시 개인이 행사할 수 있었던 선택의 범위를 함께 보아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조선은 과연 무엇을 위한 나라였는가

여기에서 조금 더 불편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조선과 일제를 너무 단순하게 대비시킨다. 조선은 우리의 민족국가이고, 일본은 외부의 침략자라는 구도다.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를 이상화할 필요도 없다.

조선 역시 매우 강한 신분질서를 가진 사회였다. (1-5프로의 지배층이 나머지를 강력하게 지배하던 계급 사회였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격차가 컸고, 국가의 운영 역시 소수의 양반 지배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을 지킨다’는 말이 당시 모든 조선인에게 동일한 의미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늘날의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에서는 고종이나 명성황후를 외세에 맞서 조선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나라’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도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국가였을까? 아니면 왕실과 기존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하는 국가였을까?

이 질문은 조선 왕실과 지배층의 일부가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에서도 일정한 특권과 지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조선의 지배층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층 일부가 새로운 지배체제에 편입되기도 했다.

따라서 친일 문제를 단순히 ‘조선인 대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대립으로만 이해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어쩌면 그 안에는 민족의 문제와 계급의 문제, 그리고 권력의 연속성이라는 문제가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의 모든 제도를 부정해야 하는가

친일 청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 하나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만약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직이나 제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거하고 모든 기관을 폐지해야 했다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행정관료를 모두 제거하고, 경찰 조직을 모두 없애고, 의료인과 기술자까지 모두 배제하고,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철도와 병원, 교육기관과 행정체계를 모두 폐기해야 했을까?

실제로 해방 직후 한국이 그런 방식으로 사회를 완전히 초기화했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대학교나 여러 병원(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철도와 같은 근대적 제도와 시설 역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기관 자체를 ‘친일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도와 그것을 운영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도라는 기술적·사회적 인프라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철도가 식민지 지배와 수탈에도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근대적 행정·의료·교육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식민통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해방 이후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에서 친일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 자체보다는 해방 이후의 처리 과정에 있다.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것이 아니었다. 행정과 경찰, 군사, 교육 등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력과 조직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해방 직후에는 좌우 대립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정치적·사회적 격변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일 청산은 일관된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기보다는 정치적 상황과 권력관계에 따라 흔들렸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 과정에 다시 편입되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친일 문제를 단순히 “누가 친일파였는가”라는 과거의 인물 평가 문제로만 보면 끊임없이 싸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 시기의 인적·제도적 유산이 상당 부분 새로운 국가에 이어졌는가?”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했고,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잃었으며, 어떤 세력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재편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와 진보, 그리고 현재의 정당 정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친일 문제를 민족주의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

그래서 나는 친일 문제를 단순히 ‘친일파를 찾아내 처벌하자’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명백한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책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모든 사람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명확하게 나누는 것도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식민지배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했고,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식민통치에 협력했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식민지 행정체계에서 일했고, 누군가는 아무런 정치적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행동과 책임의 정도는 서로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친일파라는 개념 역시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 아래에서 살았다는 것과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제도와 그 제도를 이용해 식민통치에 협력한 개인 역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어쩌면 친일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80년 가까이 계속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식민지배와 해방, 그리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하나의 역사적 과정으로 충분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은 완벽한 나라가 아니었고, 일본의 식민지배 역시 단순한 근대화 과정으로 미화될 수 없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시 완전히 새로운 국가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사람과 제도, 권력관계가 상당 부분 새로운 국가 안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친일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누군가에게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는 것만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살펴봐야 할 것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 선택이 식민지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해방 이후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국가와 권력체계에 편입되었는가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친일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를 무조건 감싸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반대로 일제강점기의 모든 사람과 제도를 친일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과거를 평가하려면 먼저 그 시대를 단순화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친일 논쟁을 조금 더 생산적인 역사 논쟁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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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eoped님.

STEEMIT의 일상을 웹툰으로 연결하는 AI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STEEMTOON입니다.

공개해 주신 이 글의 주제와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오늘의 스팀마을》 웹툰 소재로 새롭게 각색해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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