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의 상황
4283년 12월 31일 적 중공군과 북한괴뢰군의 38선 전역에 있어서 병력 집결을 예상하고 아군은 이에 대비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앞서 아군은 적의 치열한 반격에 봉착하게 되어 부득이 38선으로부터 철수함에 이르렀고 12월 1일 육본 작명 제247호에 의거, 수도 서울 방어에 최대한의 역량을 경주하는 동시, 최후 방어선을 임진강 남안 파주리로부터 서울 북방을 경유하여 북한강 남안 양수리와 장평리, 응봉산(膺峰山)을 거쳐 동해안의 38선 접경인 남애리에 이르는 선으로 획정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8군으로서는 가능한 한 이 선에서 일대 결전을 불사할 굳은 결의와 최악의 경우 적에게 포위되어 남방으로의 철수가 불가능하게 될 직전까지 서울 교두보 진지 및 서울 교두보 진지로부터 동방으로 연장된 상기 최후방어선을 방어하게 되었으니 즉 미 제1군단과 미 제9군단으로 하여금 서울 교두보 진지를 포함한 파주-양수리를 연하는 선까지를 담당하게 하고 또한 양수리로부터 장평리에 이르는 약 100㎞의 선을 미 제10군단(한국군 제2, 제5, 제8사단 배속)으로서 방어 책임을 담당하게 하였다.
한편, 장평리 이동 응봉산 지구까지를 이형근 장군이 지휘하는 아 제3사단이 전투 정면을 담당하고, 응봉산 지구로부터 동해안 남애리에 이르기까지의 선을 김백일 장군이 지휘하는 아 제1군단이 방어를 담당하여 이 선상에서 적의 남침을 저지 격멸하고자 기도하였던 것이다.
또한 군단 예비대로서 제3사단을 평창(DS4735)에 위치하게 하여 군단 후방지구에 침투한 적 및 적 유격대를 포착하여 이를 소탕 격멸하고자 대기하게 하였던 것이며, 장병의 사기는 대단히 왕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중부 전선을 담당한 아군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미 제10군단 군단장 육군소장 에드워드 M. 알몬드
제3사단 사단장 육군준장 최석
제18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임충식
제22연대 연대장 육군중령 이소동
제23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김종순
제5사단 사단장 육군준장 민기식
제35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박현수
제36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황엽
제27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이상철
제8사단 사단장 육군준장 최영희
제10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권태순
제16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이존일
제21연대 연대장 육군대령 하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