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142)
8월 9일의 정황(부도 제64 참조)
보현산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아 제1유격대대는 연일 전면의 적정에 대비하여 수색 활동을 전개하면서 충효동 434고지 부근에서 수색 중에 있던 해병대와 공병대 간에 피차 연락이 취해지고 있었으나 작일 돌연 적과의 접촉으로 교전 끝에 전산동으로 철수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즉시 제1유격대대는 척후대를 급파하여 전산동의 아군을 증원 도중 아 척후대에게 생포된 적으로부터 입수된 정보에 의거, 적이 점차 충효동 북방 602고지 일대에 증강되어 공세 대기 중에 있음을 알고, 충효동 북방 이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제1유격대대는 보현산 주변 진지로부터 인구동 북방 능선지대에 진출, 사주경계에 돌입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도평에서 입암에 침입한 적 제7사단 주력부대는 기계를 공격하기 위한 만반 태세를 완료하고 공격 개시 직전에 놓여 있었으므로 의성에서 아군을 지휘하고 있던 제1군단장은 아군의 이러한 전황의 위급함을 깨닫고, 즉시 군단 작명 제49호로써(부록 제32 참조) 의성에서 재편성 중인 기갑연대로 하여금 이동 개시하여 구산동에 진출, 계속 전진하여 도평동 부근의 적정을 수색하게 한 바, 현재 도평에는 적 제7사단의 일부 주력이 배치 출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당시 편성 도중에 놓여 있던 기갑연대로서는 도저히 이 적을 공격 격퇴하기 위해서는 매우 곤란하였으므로, 도평동의 공격을 일단 중지하고, 적의 병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공격하기로 결심한 후 구산동에 복귀, 동 주변에서 사주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8월 10일의 정황(부도 제64 참조)
구산동에 배치 중인 기갑연대는 작일 도평동에 출몰하던 적이 입암으로 이동 남하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즉시 연대지휘소를 명당(DQ966~155)에 설치하는 동시에 예하 제1대대를 도평동 남방 377고지와 361고지를 연하는 일대의 능선지대에 배치하여 남하하는 적에 대비하는 한편, 약간의 인원으로 편성되어 있던 제2, 제3대대는 연대 지휘소 부근에 위치하여 차기공격을 대기하여 동 부근에서 사주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구동에 제1유격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재편성 후 용천동 동북방 371고지에 배치한 제25연대 제2대대는 작일 야간에 공격을 개시, 현동 남방에 있는 352고지까지 진출 확보하고 계속 진출하여 충효동 부근의 적에게 공격을 가하였다. 이때 제1유격대대도 이 적을 공격하고자 인구동 좌측 무명고지를 출발, 제25연대 제2대대 공격에 호응하여 충효동 북방을 지향 전진하였으며, 피아의 공격 경계선은 도로 교차점을 경계로 좌측은 제1유격대대 우측은 제25연대 제2대대가 각각 담당하여 공격 목표는 제1유격대대는 504고지이고, 제25연대 제2대대는 602고지였다. 공격을 개시한 양 부대는 18:00 현재 충효동 서북방(FQ055~955) 능선 지대에서 출몰하는 소수 적을 소탕하면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사주경계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적은 아군의 충효동 진출에 따라 600고지의 약 1개 대대 병력을 지동리 전방 434고지 동서방 능선 일대에 이동 배치시켜 아군의 북상 공격에 대비하였고 그 후 도평동에 집결한 강원도 경찰 제3대대는 기갑연대 제1대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구산동에 이동, 제1공병단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제17연대도 군단 작명 제51호에 의거(부록 제33 참조) 구산동에 진출하여 도평 부근의 아군을 지원하고 있었으나, 기계 방면의 아군 전세 위기로 인하여 즉시 영천 경유, 안강으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