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4권(65)

낙동강 남부 지구에서 호남지구 일대를 거쳐 북상한 국련군 제9군단 예하 제25사단은 진주~하동~남부~광주로 하여 호남지구를 북상하였고, 제2군단은 초계~진안~전주를 거쳐 북상하였다.
한편, 경부 본선을 따라 북진한 국련군 제1군단은 좌익 부대에 미 제1기갑사단, 우익부대에 한 제1사단을 최선두로 경부 본선 연변의 각 중요도시와 (미 제1기갑사단 담당) 중부 다부동~신령~선암산 선에서 인동~신기동~내복동 선을 거쳐 낙동~상주~보은~미원~청주 선으로 하여 조치원~진천~천안 선을 경유, 북상하였고, (한 제1사단 담당) 제24사단은 후속부대로서 뒤따라 북진하였던 것이다.
미 제1군단은 단기 4283년 9월 13일 야간 제8군사령부로부터 작전명령(19~50)을 수령하였으며, 그 작전계획에 의하여 비로소 낙동강 선에 의한 방어전에 종말을 고하고 부산 사주방어를 실시 중인 한국 및 국련군 부대가 인천 상륙작전에 호응하여 총반격을 개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 제1기갑사단 및 한국 제1사단은 경부선을 따라 북상하는 최선두 부대로서 주도권을 장악하여 서북방으로 대구~김천~대전~수원 축선을 따라 전투지역 내의 모든 적을 섬멸하여야 했던 것이다.
미 제1기갑사단은 이 작전을 위하여 제5보병연대를 배속받고 제5기갑연대, 제7기갑연대, 제8기갑연대, 제5보병연대로써 주요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제8기갑연대를 다부동 남방 우익 전선에, 제8기갑연대를 낙동강에 연한 좌익 전선 부대로서 배치하고 제5기갑연대를 앞에 언급된 양 연대의 중앙에 배치하여 주요 공격부대로 하였고, 제7기갑연대는 주요 공격 부대의 전진에 뒤이어 적의 우회 부대를 격멸하는데 투입하였다. 이리하여 동 사단은 9월 17일에 예정대로 작전을 개시하였던 것이며, 동 사단은 공격 개시일인 9월 17일은 적으로부터 심대한 반격을 받아 다대한 피해를 예측, 각오하고 임하였으나, 의외로 커다란 피해를 받지 않고 진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