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66)

  1. 전투 경과 개요(부도 제43 참조)
    단기 4284년 3월 2일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 휘하 김동수 대령이 지휘하는 기갑연대는 대관령 동쪽 자락 구산리에 지휘소를 두고, 우익 제26연대와 좌익 제7사단 제5연대와 연이어 사단 좌익 전선을 담당하여 배치 중에 있었으며, 본 작전에 공격부대로서 임무를 가지고 3월 2일 각 대대별로 행동을 개시하여 병두산 북쪽 자락(DS657666)부터 구석동을 거쳐 859고지(DS631703)에 이르는 선에 계획된 LD에 진출하였다.
    이제 각 대대별로 LD 통과, 진격 상황을 보건 데 용산(DS690655)을 중심으로 그 서사면 일대에 배치 중이던 제2대대는 06:00 이곳을 철수 주접근로를 경유, 08:30 구석동 남방(DS640682) 지점에서 LD를 통과 진격하였고, 월정동(DS653692) 서북 능선 일대로부터 행동을 개시한 제1대대도 예정대로 09:00 859고지(DS632695) 지점에서 LD를 통과 진격하였다.
    횡계리(DS745690)에 연대예비대로 있던 제3대대도 행동을 개시하여 주요 공로를 경유, 11:00 구석동(DS635691)에서 LD를 통과함으로써 전 연대가 공격에 투입되었다.
    이 공격을 위하여 철수한 기갑연대의 원위치에는 이촌(DS756725)에 위치한 제26연대가 기갑연대의 전 임무를 계승하여 그 제3대대가 급거 월정리 일대로 진출 배치하였고, 또 예비대로써 구산리에 있는 제9사단 제29연대를 대기하게 하였다.
    공격부대의 공격 상황을 보면,
    LD를 통과한 제2대대는 예하 제7중대로 하여금 한강 좌측을 진출 직접 하진부리(DS610650)를 공격하게 하고 주력은 우선 676고지(DS620672)를 점령한 후 다시 하진부리에 돌입하여 14:00 764고지(DS606656)를 점령하였다.
    제1대대는 중대 병력의 적 저항을 물리치고 870고지(DS622688)를 점령한 후 공격을 계속하여 17:00 833고지(DS596699)를 점령 확보하였다. 제3대대는 중앙 정면을 돌진하여 17:00 797고지(DS569699)를 점령 확보하였다. 이에 제2대대는 다시 공격을 개시, 인접 제3대대의 엄호하에 진출 21:00 속사치(DS573663)에 돌입하여 970고지(DS567670)를 점령하고 각 대는 사주방어에 들어갔다.
    아군의 공격에 격파 당한 적은 초조한 나머지 야음을 이용하여 철야로 증강한 후 날이 밝자 소속 불명의 적 약 1,000명이 937고지(DS592704)방면으로부터 또 1개 대대의 병력이 사오개(DS580643)방면으로부터 각각 내습하여 아 연대 주력을 협공할 태세를 보이는 동시, 연대 정면에는 소속 불명의 또 다른 적 1,000명이 준동할 뿐만 아니라 내신기(DS643610)방면으로부터 적 제15사단 주력이 북상 출현하였고, 또 북방에서는 한강 연안을 따라 적 제2사단 주력이 남하 중이었으며, 이 사단 주력은 아 연대 후방을 제압 후 완전 포위할 기도임이 묘연(渺然)하였으므로 연대장 김동수 대령은 공격부대를 전진 지역으로부터 철수할 시기라고 결심하고 11:00경 제1대대의 엄호하에 먼저 제2대대를 제1대대의 진지로 철수시키는 동시에 제3대대는 676고지(DS620672)와 870고지(DS602685)로 양분, 철수하여 엄호 진지를 구축하였다.
    제2차로 제3대대의 엄호하에 16:00경 제1, 제2대대를 859고지(DS632703)로 철수하여 제1대대와 제10중대를 그 북방 능선에 배치, 최종적인 제3대대의 철수를 엄호하였다. 이와 같이 개미 떼 같이 모여드는 적으로부터 원진지로 철수하는데, 성공한 기갑연대는 간평리 남방(DS647708) 지점에서 한강을 도하, 동방 고지를 넘어 다음날 3월 4일 02:00 광천(DS682693)에 도착, 동일 연대는 가사모리(DS775705)에 집결 완료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