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2)

이처럼 한국에 있어서 38선 돌파에 관한 현실 문제에 다다르게 되자 당시 세계 각국은 그 군사적, 정치적 영향을 국제 정치의 전 국면에서 검토하기를 희망하였으며, 그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소련과 중공 개입의 시기가 이 단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또한 38선 돌파 여부로서 한국 사변이 극동 전 지역에 나아가서는 세계 전쟁으로 확대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였던 것도 사실이었으며, 국군과 국련군이 낙동강 선까지 지연작전을 전개하고 있을 무렵인 7월, 8월, 9월 3개월간을 통하여 세계의 소식통은 중공군의 북방 혹은 한만 국경 이동설을 끊임없이 발표한 바 있었으며, 각국의 관측은 어디까지나 북한괴뢰군의 전세가 유리한 동안에는 중공군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일치된 견해였다.
그리고 거듭되는 세계의 관심은 중공군의 서장 침입설을 비롯하여 월남 호지명 정권과의 밀약에 의한 프랑스령 베트남 공격설, 버마 침입설 등등을 기회 삼아 다른 극동 지역의 분규를 조성할까 우려하였던 것이며, 한편 북한 원조에 대한 중소 밀약설이 동년 8월부터 세론을 자극하여 국군 및 국련군의 작전이 우세하게 되어 38선을 돌파할 경우에는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까? 하는 견해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동년 9월에 발생한 소련기 격추 사건은 극도로 긴장된 세론을 다시금 놀라게 하였으며, 이 문제는 국부적 문제로서 해결을 보았으나, 9월 말에 이르러 중공은 미군기가 만주 지역을 폭격하였다고 누차 안보에 제소하였으나,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렇듯 미묘한 정세에 비추어 미국 정부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중국 본토의 존중을 선언하고 중공군 개입을 경고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11월 16일 미국 트루만 대통령 담화를 중공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다”라고 통격(痛擊)하였다. 사태가 이에까지 이르게 되자 세인의 주목은 더욱 한국 문제로 총집중되고 말았다.
이에 앞서 11월 16일자 국련군 총사령관 특별 보고에는 새로운 적군 곧 중공군이 국군 및 국련군에게 광범위한 도전을 하고 있는 사실이 안보에 공식으로 지적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공 군이 괴뢰군 속에 끼어 있는 사실은 10월부터 열국의 관심을 끌게 하였다. 그러나 국련군 사령부에서는 그 당시는 정확한 적의 병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11월 26일 국군과 국련군은 총공격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로써 11월 28일 국련군 총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은 “의용군 아닌 대규모의 중공 정규군이 전선에 배치되어 있으며, 막대한 이들 증원군이 국경 부근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 대하여 지금이야말로 국군 및 국련군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언명하였고, “이러한 사태는 이미 전선사령관의 권한을 넘은 것으로 국련이나 외교기관에 의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소신을 명백히 하였다. 이와 같은 중공의 침략적 행동은 그 후 12월 7일 한국통일 부흥위원회 보고에서 거듭 확인되었고, 그 침략적 상황은 국련군 총사령부 제9, 제10차 보고서에 상세히 기술되었다.
일방 전선에 있어서는 국군과 국련군의 철수작전이 막심한 위험 중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전선은 지극히 불리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중공군 침입으로 말미암아 전세가 일변하게 되자 세계 여론은 비등(沸騰)하였으며, 특히 한국민과 미국은 극도로 흥분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1월 30일 미 트루먼 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 석상에서 저 유명한 원자탄 사용 고려 중이라는 중대한 선언을 하기까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