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4)

그러나 소련은 이와 같은 3인 위원회의 신 정전 안에 대하여 반대 투표를 하였으므로 중공의 거부도 명약관화의 사실로 예상되었지만 어쨌든 당시 일주일 내에 동 제안이 중공에게 거부되거나 또는 아무런 회답도 없을 경우에는 미국 기타 국가는 중공을 한국에 있어서의 침략자로 규정할 강경한 결의안을 제시할 용의를 가지고 있었다.
단기 4284년(1951년) 1월 17일 중공 외상 주은래는 라디오를 통해 3인 위원회의 신 정전 안을 거부하는 동시에 빠른 정전을 위하여 먼저 7개국(미, 영, 프, 소, 인도, 이집트, 중공) 회의를 중국에서 개최할 것을 요구하였고, 동 27일에 이르러서는 또 정식으로 정전 신제안을 전달하였는데 그 대의는 만약 국련이 전 극동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한다면 협상의 첫단계로서 조건부 정전을 토의하는데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무성의하고 침략적인 중공의 회답은 국제 공의의 유일 최고 기관인 국련에 대하여 조소적이며 또는 경시적인 태도로서 국련을 농락한 것에 불과하였고 심지어는 이 신 정전안이 발표되었을 때 크레믈린의 공산당 신문은 “정전안의 의도는 미국무성이 전쟁 계속을 위하여 한국에 있는 미국 군대를 증강하고 재편성하는 시간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다”라고 까지 폭설(暴說)을 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을 비롯하여 평화를 애호하는 인류의 복지를 염원하는 자유세계 각국은 중공에 대한 탄핵론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었으나 이는 1월 20일에 이르러 국련 미국 대표인 오스틴이 자유세계 각국을 대표하여 중공을 한국의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국련 정치위원회에 제출함과 동시에 그 결의문으로서는 아래와 같으며 이제 그 내용을 보건대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 상임회국의 의견 불일치로 말미암아 중공에 관하여 국제적 평화 안전 유지에 대한 그의 주요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였음에 비추어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중공 인민정부가 평화적 해결의 의도에서 국련이 제안한 모든 한국 정전안을 거부하고 그 군대가 한국에 대한 무장 침략과 국련군에 대한 대규모적 공격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음에 비추어 중화인민 정부는 한국에서 이미 침략을 감행하고 있던 자들에 직접적인 원조를 제공하고 또한 이 지역의 국련군에 대하여 적대행위를 함으로서 그 자체 한국을 침략하였다는 것을 단정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중공인민정부에 대하여 한국에 있는 그 군대 및 국민으로 하여금 국련군에 대한 적대행위를 정지하고 한국으로부터 철퇴할 것을 요구하며 국련은 침략에 대처한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을 확언하며, 모든 국가와 정부에 대하여 한국에 있어서의 국련의 행동에 대하여 만전의 원조를 계속 제공할 것을 요청하며 한국에 있어서의 침략자에 대하여 어떠한 원조 제공도 이를 삼갈 것을 모든 국가와 정부에 요청하며 긴급조치로서 집단 대책위원회 위원으로서 구성된 위원회를 설치하여 총회에 보고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여 한국의 정전을 실현하고 평화적 방법에 의하여 한국에 있어서의 국련의 목적을 달성함이 국련의 계속적인 정책임을 단언하고 총회 의장은 이후 2명의 인원을 임명하여 차등 목적을 위하여 알선(斡旋)하도록 의장과 적의 회합을 것을 요청한다고 함으로서 미국의 태도는 자못 강경한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동 24일 계속 미국 대표 오스틴은 정위 석상에서 중공의 회답은 국련을 혼란 분열시키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에 연막을 치려는 더러운 회답이다. 이러한 전술로 국련을 농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련은 침략에 대하여 항쟁하여야 할 것이며, 침략을 포상(褒賞)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경의 회답은 현실상의 침략자를 중공 정부로 인정하라는 국련에 대한 최후통첩이라고 중공을 통렬히 공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