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7)
이렇듯 한국전선에 대병력을 투입한 중공군은 11월 7일에 이르러 “중공의용군 2,000명이 한국전선에 참가하였다.”고 허위 방송을 하고 있으나, 실지 행동은 어디까지나 의용군이 아닌 침략군으로서 그들의 침략 근성을 여지없이 전 세계에 폭로하였다. 당시 한만 국경선을 넘어 한국전선에 불법 개입한 중공군과 북한괴뢰군의 병력은 대략 아래와 같다.
- 중공 제3야전군 병력 100,000명
- 중공 제4야전군 병력 170,000명
- 북한괴뢰군 병력 60,000명
이상과 같은 병력으로서 공격을 전개해 온 적의 반격 작전 개념을 고찰하여 보건데 적은 아방에 비하여 절대 우세한 병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적은 도하작전의 애로를 극복하기 위하여 동절 동결기의 기후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얼음 덮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무난히 도하 한 중공군 제3, 제4 야전군은 만주에서 재편성, 재정비된 괴뢰군을 거느리고 기습적인 작전으로써 한만 국경선까지 진출한 국군 및 국련군 부대에 대하여 포위 섬멸 작전을 전개하여 왔다.
따라서 서부 전선으로 남하 공격하는 중공군 제4 야전군과 괴뢰군 제1군단은 11월 5일 정주, 박천, 영원에 침입한 후 점차 근대 말기의 인해전술로서 국군 및 국련군 전선을 압축하고자 계속 덕천~영원선까지 남하 공격하여 왔다.
적은 이 선상에 있어서 가장 전략적 요충지를 형성하고 있는 덕천, 개천 지구에 병력을 총 집결하면서 아방의 최종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청천강 선에서 일대 반격전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동북부 전선에 투입된 중공군 제3야전군도 괴뢰군 제4, 제5군단과 더불어 서부전선의 적 공격부대에 호응하여 일부 주력은 양덕~영원~곡산 부근으로 남하 공격시킴으로써 동해안 지구 특히 혜산진과 장진호 지구의 국군 및 국련군 부대에 대한 고립화를 기도하였다.
이처럼 적은 북한을 계속 이분한 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서부 공격부대로 하여금 최단시일에 적도 평양을 재확보하여 급거, 38선 진출을 획책하는 한편, 동해안 지구에 있어서도 중공군 지원 하에 이 지구로 남하하던 괴뢰군 제4, 제5군단은 중부 산악지대에서 유격전을 시도하고 있던 괴뢰군 제2군단과 합류하여 초기에 기도하던 바와 같은 아방에 대한 포위 섬멸 작전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군 및 국련군의 계획성 있는 철수작전으로 인하여 12월 말경에는 적의 주력부대가 38선상에 도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