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77)

한편, 아 제10연대와 사단 대전차포대대의 정면에도 동시각에 중공군 제65군 3개 사단이 내습하여 피아간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으나, 제16연대의 좌측방을 우회 돌파하여 노도와 같이 침입하여 온 적 중공군 제66군의 주력에 의하여 아 사단은 완전 포위되었다.
이리하여 적 포위망에 고립된 아 사단은 군단장 명에 의거 배속된 포병 1개 대대 및 전차 5대로서 혈로 개척을 기도하였으나 여의치 못하고 항공기 정찰에 의해서도 분산된 부대를 발견하지 못하므로 군단장 명에 의하여 증원부대 및 전차는 원대 복귀하게 하고 구출 작전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월 12일 05:00에 이르러 아 제21연대는 창봉리(DS0758)일대에서 결사적인 돌파작전을 감행하여 계속 철수하고 있었으며 제10, 제16연대도 적의 중위를 돌파하여 각각 분산된 채 철수하고 있었으나, 이때 제10연대장 권태순 대령은 이미 장렬한 전사를 당하고 말았다. 한편, 사단 포병대 제50대대는 전차 엄호하에 돌파 철수를 기도하였으나, 적의 도로 차단 및 파괴로 인하여 철수를 단념하였으며 또한 배속 중인 포병 제20대대의 2개 중대는 적의 도로 파괴 직전 전차 2대의 엄호 하에 돌파 철수에 성공하였다. 이에 앞서 2월 12일 04:00 적의 전초 중대가 횡성에 돌입하자 사단 지휘소는 사단사령부 전 장병을 동원하여 이 적을 요격하여 격전을 전개하여 일시는 이를 격퇴하였으나, 점차 증강되는 적의 대병력에 의하여 부득이 12:00 주포리로 지휘소를 이동하는 동시 원주~문막리(CS9529) 간에 낙오자 수용선을 설치하여 병력 수습에 적극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당 횡성 지구 작전에 있어서 특기할 사항은 당시 아 제8사단장인 최영희 준장은 아 제8사단의 공격 진출 지점을 이목동(DS0053)~창봉리(DS0758)를 연하는 선 일대에서 정지하여 이 지대에다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남침하는 적 1개 병단의 적정의 파악과 적에 대한 요격 태세를 취할 것을 당시 동 지역의 작전 전반을 지휘 담당하고 있던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에게 누차 건의된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단장은 적 병력의 과소평가로 인하여 이 건의가 묵살되고 아 제8사단은 적의 진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불안전한 적정 하에 더구나 적에 비해 너무나 과소한 병력으로서 적과 대결하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결과가 곧 본 전투 실패를 초래한 최대의 원인이라 할 것이다.
이후 2월 13일과 14일 양일에 걸쳐 아 제8사단은 지휘소를 주포리에 두고 전력을 경주하여 낙오자 수용에 진력하였으며, 2월 15일에 이르러 사단은 또다시 제10연대를 고모동(DS2509)에, 제16연대는 원박리(DS1906)에, 제21연대는 주포리(DS2209)에 각각 위치하게 하여 낙오자 수용과 부대 정비에 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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