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8)

제3절 아군의 전반적 상황
민족적 흥분과 감격 속에 원한의 38선을 돌파하고 국경선에 도달한 동부전선의 제1군단과 서부 전선의 제2군단 및 국련군은 의외의 새로운 적인 중공군의 대부대와 접촉하게 되었다.
10월 26일 처음으로 아 제2군단장 유재흥 장군 휘하 제6사단 제7연대는 초산 북방의 압록강변에 도달하였을 때 돌연히 중공군 2개 연대 이상의 적으로부터 포위공격을 당한 것을 시초로 온정리 부근에서는 아 제2군단의 1개 연대가 또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다. 동시에 장진, 부전 지구에서도 국군과 국련군은 중공군 제3야전군의 강압을 받음으로써 전 전선에서 일제히 적의 반격에 조우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군 전면에 출현한 적은 점차 증원되는 막대한 병력으로서 이때 운산 지구 아 제6사단은 처음으로 병력 기재에 손실을 받고 철수하는 한편, 29일에는 삭주 방면으로 이동하였고, 제8사단은 희천을 포기하였으며, 따라서 동북 전선의 미 제10군단에서는 3명의 중공 포로를 생포함으로써 적의 대공세를 사전에 간파하였다. 그리하여 11월 5일 중공군 및 북한괴뢰군은 정주~박천~영변에 침입하여 국군 제2군단 및 국련군 전선을 압축하였으며, 적은 여기서 잠시 발을 멈추고, 개천 지구에 병력을 집결하여 미 제8군의 우익을 파괴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제2사단은 새로 청천강으로 급파되어 전선의 아군을 증원하였으며, 따라서 맥아더 총사령관은 아방의 전선을 정비시키는 동시 11월 24일에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에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군의 공세는 우세한 적의 반격과 동기에 따르는 항공지원의 불충분으로 말미암아 실패에 돌아가고 동 25일에는 아방의 전선에 동요를 초래하는 일방 적의 좌측 배후로부터 견제 작전을 목적으로 서진을 명령받은 장진호 지구의 국군 및 국련군도 진격 작전이 저지되고 말았다. 28일에 이르러 아 제2군단의 방어선인 덕천, 영원 지구가 붕괴됨으로써 29일 국군 및 미 제8군은 청천강 남안으로 총철수하여 남하하는 적에게 대비하였다.
이때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12월 4일 중공군 백만이 북한에 집결 중이며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서부 전선의 국군 및 국련군은 점차 차기의 전략적 작전에 대비하고자 일단 임진강 선까지 철퇴를 결정하여 전면적인 재공세로 전세의 만회를 획책하였다.
이와 동시에 동부 전선에 있어서도 미 제10군단장인 알몬드 소장은 예하 제10군단에게 철퇴를 명령하고 한만 국경 최종단에 도달한 바 있는 김백일 장군 휘하의 아 제1군단의 수도사단과 제3사단도 철퇴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청천강 남안에서 적의 남하를 저지하고 있던 아 제2군단 및 국련군 부대는 축차적인 지연작전으로서 12월 4일에는 평양 철수를 완료하고 일로 임진강 선으로 남하하였다.
아군에 뒤이어 서해안 지구로 남진한 중공군 제4야전군과 괴뢰군 제1군단은 12월 5일 평양에 침입한 후 계속 평양 전선에서 약 15일간 차기 공세를 기도하여 후속부대의 도착을 기다리는 한편, 전선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강계 일대에서 재편된 괴뢰군 제5군단은 중공군 제3야전군과 합류하여 동해안 지구에서 분전하는 김백일 장군 휘하의 아 제1군단 및 미 제10군단의 고립화를 기도하여 왔고, 거듭 아 제1군단의 북진을 저지하고 있던 괴뢰 제4군단은 다시 남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적 제5군단은 중부 산악지대에서 유격전을 감행하고 있던 적 제2군단과 합세하여 12월 하순에는 화천 이동의 38선 일대의 산악지대에 집결을 완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