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

또한 장진호~함흥~원산~금성으로 남하한 적 제3군단도 아 공군으로부터의 막대한 타격을 받으면서 12월 말일 38선 일대 집결을 완료함으로써 경부 본선과 신계~시변리의 두 선을 따라 남하하던 중공군도 12월 24일 고랑포에 출현함으로써 38선 이남의 진출을 행하여 왔다. 따라서 동부 전선 장진호 지구에서 철수를 개시하고 있던 미 제10군단 예하의 미 제1해병사단 및 미 제7사단은 동북 지구로 남하한 중공군 제3야전군 6개 사단에게 포위를 당하자 11월 30일부터 동 지역을 중심으로 피아간에는 일대 격전이 벌어졌으며 미군은 구원차 북상한 미 제3사단과 협력하여 적에게 막대한 손상을 주면서 악전고투 끝에 12월 8일 고토리까지 철수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혜산진 지구의 아 제3사단 및 미 제7사단의 일부 병력도 철수를 개시하는 한편, 청진에서 철수하는 수도사단 제18연대와 같이(제1연대 및 기갑연대는 육로로 철수함) 해상으로서 12월 14일 흥남에 도달하였다. 이처럼 세계 전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흥남에서의 해상철수는 동년 12월 14일부터 시작되어 24일에 완료하였다. 이는 오직 국군 및 국련군의 탁월한 철수작전과 제해공권의 완전한 장악이 이 철수작전을 완전히 성공하게 하였으며, 이 철수작전을 통하여 흥남 해두보에서의 아 공격전으로 말미암아 중공군 3개 사단이 분쇄된데 반하여 아방은 약 6,000명의 손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흥남을 철수한 수도사단은 묵호로 상륙하고 아 제3사단 및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은 포항으로 각각 상륙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아군이 취한 작전 개념을 좀 더 부연(敷衍)하여 본다면 이미 적 중공군의 남침 경과에 대하여는 상술한 바 있거니와 이 적에 대비하여 한만 국경선에 도달한 국군 및 국련군 부대는 10월 26일 이해 한국전선에 대거 침입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에 대하여 도처에서 격파 작전을 전개하는 한편, 계속 투입되는 적의 대규모적인 공격으로 아방은 부득이 서부 국경선에 진출한 아 제2군단과 국련군은 점차 병력을 후방으로 남하 철수시키는 작전으로 나왔고, 11월 초순 경에는 거듭 아방이 유지하고 있던 정주~박천~영변~개천~덕천 선이 불리한 전황 속에서 전선이 압축되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11월 말일에는 최후적으로 미 제2사단의 급파와 더불어 청천강 남안에서 병력을 총정비, 적에 대한 再반격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동북부 전선에 있어서도 국군 제1군단 및 미 제10군단은 혜산진~장진호를 연하는 선에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하여 일부 엄호 부대로 하여금 지역적인 방어작전을 감행하게 하면서 주력부대에 대한 철수작전을 전개하는 지연작전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연작전의 결과로서 아방은 평양~원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하는데 있었고, 이 선상에서 국군과 국련군 부대는 적에게 출혈 저지작전을 강요하는 지연작전으로서 국군 및 국련군 부대의 철수에 대한 시간적 여유를 획득하는데 노력하였다.
한편, 서부에서도 12월 2일 평양을 포기하고 임진강 선으로 총 철수하는 동시에 동북부에 있어서도 장진호 지구와 해안지대를 돌파하여 흥남 해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국군과 국련군 부대에 대한 해상 철수를 용이하게 하였다. 뿐만아니라 놈들의 학대에 시달리던 이북 동포도 국군 및 국련군의 뒤를 따라 강원, 평안, 황해, 함경도로부터 자유대한으로 피난해 내려오는 자 무려 수백만 명에 달하였던 것이다.(부도 제1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