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 새로운 것 100개 도전하기_최악의 달에 대해 생각해보다.

in #life6 years ago (edited)

거의 오늘부로 한달 전부터 엄청 많은 일들이 생겼다.
물론 그 일들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생각나는 걸 쓰면 이렇다.

김치만두를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다 쉰 만두였다. - 아마 잔반으로 남은 김치로 만들어서 쉰거 같다. 사람 침 뭍은 건 빨리 쉬니까.
추워서 스타킹을 한 무더기 샀는데 다 발목이 없는 스타킹이었다 - 스타킹을 신고 다시 양말을 신어야 하는 그 번거로운 과정은 끔찍하다. 그런데 자세히 안 보고 산 내 잘못이 많다.
요리 할 시간이 없어서 반찬을 시켰는데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쉬어서 왔다 - 그쪽 말로는 식초 때문이라는데 나 같이 미각이 안 발달한 사람도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
변기가 막혀서 넘쳤다 - 집 근처가 번화가인데, 가장 핫한 토요일 자정에 남들 다 술 사서 가는데 혼자 뚫어뻥을 계산할 때의 심정이란..뚫어뻥 의외로 안 비쌌다.
세탁기 탈수 안되서 쉰 내나는 옷을 입어야 했다 - 이건 자가 수리했다. 수리 과정은 나름 흥미로웠다. 근데 탈수 안 한 옷을 지금 날씨에 말리니 집 습도가 거의 아마존 급이었다.
친구가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시킨 택배를 자기 선물로 착각하고 남한테 줬다 - 어이없지만 서로 잘 풀었다.

이런 귀여운 일들도 있는 반면

피해자로 파출소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왔다 - 경찰서를 간 건 내 인생 처음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친절했다.
지하철에서 씨발 좆 같은 년이란 욕을 들었다 - 내가 한 건 그냥 내 자리 앞에 자리가 나서 앉은 것 뿐인데 옆에 서 있는 아저씨인지 할저씨인지 욕을 했는데 싸움 만들기 싫어서 못 들은 척 했다. 나는 내 인생 살면서 코스모스 같이 여린 사람이라 저런 말 들은 짓 별로 안한다.
공무원한테 갑질을 당하다 - 심지어 한 쪽 귀로는 음악을 청취 중이셨다. 음악이 나라에서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지만, 갑질과 음악 청취 두 가지를 하는 대단한 재능이란.. 국민신문고를 처음으로 이용했다.
거래소 cs센터와 입 씨름을 하다 - 내가 욕한것도 소리 지른 것도 아니지만, 남한테 안 좋은 말을 하며 압박 주는 것만 해도 나한테는 스트레스다. cs부서가 의사결정 권한이 많지는 않은 것도 알지만.. 그런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갑질을 당한듯..

이외에도 분리수거를 하다가 남이 던진 쓰레기 봉투를 맞을 뻔한 것도 있고, 피해자로 진술했다고 말했더니 니가 애초부터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경찰서 진술 쓰는 것부터가 너한테 피해 올 거다라는 말을 듣던가(진술서를 쓰는 건 피해 전혀 없다), 척추가 아픈데 동시에 한쪽 다리가 발끝부터 무릎까지 저리다던가(디스크는 아닌 거 같다 신경이 눌린 거 같은데.. 운동 부족이 원인인듯), 위가 아프다던지(근데 아플짓을 많이 했다 이건 식습관부터 고치면 됨), 현금이 없어서 모르는 사람한테 800원을 빌린다든가(이건 재밌었다. 불가능한 요청인 줄 알았는데 쉽게 승낙해주셨고, 나는 천원을 계좌이체했는데 그분은 2분 만에 25% 수익을 얻었다.) 등등..

작년에 최악의 일은 생각해 보면 동생하고 싸운 것 그리고 한참 재미 붙어서 열심히 다니던 수영장에서 추행 당해서 그만둔게 다 였다. (그 사람은 내게 내 수영 실력이 왜 자유형과 배형에 멈춰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핑계가 된다.)

특히 지하철은 거의 쥐꼬리만큼 있던 인류애 조차 말살시키는 공간인데.. 참 별별 유형의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아무 말도 없이, 모르는 사람 사이에 그런 해프닝이 생기다니 참 흥미로울 지경이다.
그런데 차를 몰고다닐까 생각을 해봐도.. 차는 자기 개인 공간은 보장되는데 한번 도라희를 만나면 금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타격이 크기에 생각을 접었다.

평소에 모든 일에 무관심한건지 낙관적인건지 긍정적인건지 참 깨발랄하게 사는 친구에게 너도 이런 도라희들을 마주치니? 이런 내 의지가 개입되지 않았는데 주옥 같은 상황을 만나니? 물어보니 의외로 그 친구도 한참 생각해보더니 불과 한달 전만해도 그런 사건이 생겼더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조용히 존재감을 숨기고 닌자처럼 다닌다고 해도 유쾌하지 않은 사건들은 생기기 마련이고, 피할 수 있는 대책은 없다. 게다가 요즘 뉴스에서 묻지마 폭행, 시비 사건이 연일 터져나오니 나 같은 코딱지만하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은 더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마주치면 그 사람의 의도나 인성보다는 내 자신에게 물었던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만만해서 그런가? 내가 마동석처럼 생겼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까?
물론 내가 갑자기 마동석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게 문제에 대한 알맞은 의문은 아닌 것 같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물론 한달 간 이런 그지 같은 일들이 매주 2~3건 씩 있는 기간은 내 인생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건도 별로 없었는데, 이런 사건들에 대해 대처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 해 봤다.

  1. 똑같이 해준다. -> 유치하다..
  2. 인류애 게이지 0%의 염세주의자로 살아간다 -> 피곤하다..
  3. 남한테 욕한다 -> 시간 아깝다.

아니 뭐 방법이 거의 없는거 아닌가.. 억울하긴 한데 딱히 방법도 없다.
내 의지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예측할 수 있어 통제할 수 있는 일들도 아니고..
소리지르고 욕 한다고 해서 내 기분이 풀릴 것도 아니다.. 30초는 후련하겠지만 내 성격으로는 25일은 생각나서 괴로울 듯..
게다가 내가 저런 걸 얘기하면 너 왜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을 들을까봐 두렵다
(예민한거 맞다. 좋게 말하면 관찰력이 뛰어난 거고..)

그럼 도대체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고민해봤더니 정신승리 밖에 없다.
최대한 둔감하게 대응하고, 감정 소모하지말고, 바로 잊어버린다 그리고 내 할일하고 갈 길 간다.
그런데 이 선택지는 재미가 없다. 내가 왜 그래야하나? 의문이 들만큼 내게 동기부여가 안된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 그 순간만큼은 시트콤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것?

그래서 앞으로 일주일간은 시트콤 무대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넘기거나, 코난 오브라이언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입을 해보기로 했다. 아니면 최소 무시하거나.

목적은 하나다.. 결국 정신 에너지를 아껴서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것..다만 과정이 재미있으면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게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확신은 안든다.. 프로불편러도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파출소 진술 외에는 그닥 프로 불편러가 될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도 있었다.
최근 거래로 거의 백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줄일 수 있었는데, 상대방도 소위 쿨매너를 지닌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인류애가 떨어지는 지하철에서 할머니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가서 들어드렸더니 조그만 아가씨가 기특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만원 계단에서 순간 훈훈한 주목을 받았는데 부끄럽긴한데 기분은 좋았다.
난생 처음으로 돈까스를 튀겨 봤더니 성공적으로 잘 익었다..
모 치킨 점은 방문포장하면 이천원 할인 정보를 공유했더니 큰 호응을 얻었다... 그래 맞다 사실 좋은 일을 쥐어짜내고 있긴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최악의 일들이 일어난 것도 내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생겨난 일들인 것 같다.
좋게 생각하면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최소한 저렇게는 하지말아야지라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도 있고..

정리하자면, 일주일 간 '관용 주간'을 시범 실시 해 보겠다는 것, 그리고 다음 주에는 꼭 로 또를 사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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