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 새로운 것 100개 도전하기_매주 기다리는 드라마가 생기다. (스포 있음)
사실 나는 TV를 거의 안 본다. 엄밀히 말하면 2018년도 이전에는 그랬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유투버들이 생겨나도 한달에 10번 유투브에 접속할까 하는 정도로,
나는 영상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귀찮은게 컸던 것 같다. 책과 같은 텍스트 매체의 경우 내가 속도를 조절해 가며 읽을 수 있는 반면 영상 매체의 경우 빨리 감기 기능을 지원안해주면 앉아서 원하는 내용이 나올 때 까지 기달려야 한다. 심지어 매체 특성 상 빨리 감기를 하면 그 풍미가 사라져 버려서 사실 볼 이유가 없다..
(만약 나 같은 프로 귀차니즘러가 영상매체에 대해 억지로 기획안을 짜낸다면, 아마 책과 같이 영상 내에서 원하는 부분을 검색할 수 있는 기능.. 태그를 만들지 않을까? 이미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써본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는 가족들은 뉴스나, 10시 드라마를 챙겨 봤기에 거실을 지나다니면서 소파에 앉아 잠깐잠깐 같이 보기는 했다. 이번년도 전에 내가 완결까지 본 드라마의 마지막이 '대장금'이라면 경악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청소년 때는 그래도 영화는 챙겨 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영화관 가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깜깜한 곳에 한시간 반 남짓 시간을 앉아 있는게 너무 귀찮다..개봉 바로 챙겨 보지 못해도 콘텐츠 플랫폼에 올라오면 집에서 결제해서 누워서 과자 먹으면서 보는게 내겐 더 구미가 당긴다.
그렇기에 내가 대부분 영상을 보는 건, 남들이 캡쳐 해 서 인터넷 상에 올린거였다.
그런데 이번년도 넷플릭스를 보면서 TV 시청 시간이 늘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 말고도 영상 역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를 봐도 TV를 키는 건 요즘 스카이캐슬 본방을 보려고 일주일에 2시간 정도가 다다.. 아깝다..돈.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한 것도 워킹데드를 보고 싶어서였는데, 사실 그 때 한달 간 거의 모든 시즌을 봤으니
구독 금액을 뽕 뽑기는 했다. 그후 본건 로스트, 다크 정도..
워킹데드 만큼 재밌는 미드를 찾지를 못했다.. 아직도 내 마음에 인생 드라마는 워킹데드가 1위이다.
워킹데드에서 좀비는 거들 뿐.. 사실 사람의 이야기와 갈등이 큰데, '둠스데이'라는 클리셰가 첨가되며 이런 갈등은 표면화되고, 더 복잡해 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캐롤'. 초반에는 폭력 남편을 벗어나지 못하는 고구마 답답 캐릭터였는데, 왠걸.. 뒤에 가면서 갈 수록 흔들림 없이, 이성적이고, 강한 캐릭터로 나온다.
물론 공리주의적 결정으로 갈등이 생기긴 하지만..특히 캐롤은 적에 사로잡힌 위기 상황 때, 약한 중년의 여성상을 연기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숨겼던 사격 솜씨로 모두를 제압하곤 하는데 나는 이걸 '캐롤 전법'으로 부른다.
더욱이 워킹데드의 캐릭터들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발암의 아이콘 네건 같은 경우 관점에 따라 평이 갈릴 수 있는 캐릭터다. 물론 닉 패밀리의 관점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이야 미친 싸이코로 보여지는데(나도 그랬다. 스티븐 연?을 죽일 때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 보면 놀라운 리더쉽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물론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핑계거리는 없지만, 좀비가 습격하기 전 일상에서는 아마 카리스마가 넘치는 CEO 로써도 충분히 각광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실제로 현실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저런 세상에 있으면 무슨 캐릭터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의외로 큰 사고에도 침착은 하나 저질스런 운동 능력으로 시즌 1화 종료 전 죽을 캐릭터인 것 같다. 이러한 유전자를 물려준 내 조상들은 도대체 원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참으로 미스터리하다.
아무튼, 요즘에는 '스카이캐슬'과 '굿 플레이스'를 꼬박 꼬박 챙겨 보고 있다.
스카이캐슬은 사실 넷플릭스에 떠서, 요즘 난리라고 해서 봤는데.. 왠걸 재밌고 캐릭터 또한 입체적이고,
굿 플레이스 경우 극 중의 디테일이라든지,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느낌이 좋아서 본다.
스카이캐슬은 참 다양하게 해석을 할 수 있는 드라마다.
'사교육에 열중한 나머지 아이 인성 보다는 성적을, 아이의 성공을 오롯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바라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명예에 대한 악세사리로써 대하는 부모' 이 키워드만 보면 무슨 천하의 몹쓸 부모들이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설득을 당할 수 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설득당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론을 보면 놀랍게도, 예서 엄마와 예서에 더 이입을 하고, 우주 엄마와 혜나 같은 키워드만 놓고 봤을 때 어쩌면 '정상적인' 캐릭터들이 오지랖 넓고, 너무 독해서 얄밉다, 지 아들이 사교육 안 시켜 잘된건 운이지 자기 방식을 왜 남한테 왈가왈부 하냐, 캔디형 캐릭터는 싫다, 라는 평이 많았다. 나도 이부분은 쇼킹했는데, 어쩌면 드라마가 설정한 캐릭터의 입체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서 엄마의 경우도 어릴적의 트라우마가 있고, 예서의 경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할머니의 존재가 있으니까 보여지는 행동만으로 미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다 좋은데, 극중에서 자꾸 차를 험악하게 모는 게 눈에 걸린다. 자신의 기분 변화가 극적으로 치달으면 페달을 밟고, 운전대를 확확 틀어버리는 걸로 묘사가 되는데 제발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자기 기분이 화난다고 자동차를 그렇게 몰면 자기 뿐만 아니라 1도 연관 없는 남의 목숨도 경각에 처하게 하는 정말 악랄한 짓이니..
굿 플레이스의 경우 재미있다. 현실에서 쌓은 업적의 점수를 계상해서 사후에 굿 플레이스를 갈지 배드 플레이스를 갈지 갈리는데, 그냥 우리가 알던 천국/지옥의 이미지 보다 구체화 시켜 묘사한게 재밌다. 게다가 깨알 같은 설정이 너무 좋은데 굿/배드 플레이스의 재닛의 복장과 어투라든지, 마이클이 하는 실 없는 농담이 엄청난 디테일을 보는 천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이라든지, 표현하기 어려운데 시청을 하다보면 정말로 디테일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윤리학에 대한 언급도 꾸준히 나오는데, 굿 플레이스에 언급된 윤리학 관련 위인/도서를 정리해서 극하고 비교해서 읽어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설명을 하면, 코미디 시트콤에 가까운 20분 남짓한 드라마인데, 보다보면 이 극본을 누가 썼고 연출한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유머 감각이 좋은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뉘앙스 상 심각한 문제들도 심각하기 보단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에 남는 부분들이 있다.
엘리너가 현실 세계에 갔을 때 자신의 친모를 만나는데,
그 과정도 코믹하게 그려졌다. 친모는 엘리너 자신이 위조한 신분증의 인물로 살아가고, 그렇게 해서 만난 남편은 마티니?였나 칵테일 타임을 만들지를 않나, 엘리너를 자신이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라고 소개하거나, 속옷에 돈을 숨겨 놓는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 마이클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현재 가족에게 딱 맞는 부인, 엄마로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정말로 그랬던것을 엘리너가 받아들이며, 왜 이렇게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있으면서도 자기에게는 왜 엉망인 부모 역할을 했는지, 그럴 의지가 있었으면서 자신에게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인지..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을 토로했는데, 그부분이 공감이 갔다.
그리고 타히니와 언니의 경쟁을 보며 자매간에 이렇게 틀어진 관계가 됬던 것은 자신들 보다는 부모님의 잘못된 훈육 방식에 있던 것이라든지... 사실 굿 플레이스가 시즌을 거듭할 수록 루즈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물의 과거사를 볼 수 있어서 재밌긴 하다. 특히 인물들은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그려진다. 생각해보면 사실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유전자와 가족이라는 선천, 후천적 배경임은 맞다. 아니 가족의 중심인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선천적인 요소가 더 강할 수도 있겠다.
일례로, 스카이캐슬의 독서회에 참여한 장면에서 소개 된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두권인데 이를 해석하는 예서와 차 검사? 의 의견은 아주 놀랠 노자다.
이렇게 이기적인 유전자를 물려주어서 감사합니다! 라니 ㅋㅋ.. 세상에.. 분명히 책의 논조 그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마땅히 누러야할 정당한 것이고, 남 보다 뛰어난 자신! 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용을 하다니...
(극 중에서 예서가 올백을 놓친게 국어에서 화작 때문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은 화작 문제가 굉장히 복잡하게 나오는 것 같은데, 내가 수능을 볼 때는 그렇게 어려운 영역은 아니었다.
꼬아서 내거나, 지문이 길다하더라도 다른 문제들을 다 맞출 정도로 뛰어난 예서가 화작을 틀린다는 건,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독서토론회 때 예서의 발언을 보면 왜 틀릴 수 밖에 없는지 짐작이 갈거다.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말을 하고 있는지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주관대로 해석하게 되니까.
사실 나는 이 드라마의 이런 디테일이 좋다...지나가는 화작 문제 틀린 걸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으니까...덕후력이 상승한다)
참으로 풍자적인 장면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라는 것 대신,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치로 이용해 버리다니.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위험한 대목이다. 이 장면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독서를 할 때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 못하고 내 방식 대로 곡해를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곡해를 전파할 때 남들에게 무슨 영향을 줄까, 그리고 내가 읽는 것들(대표 적으로 뉴스 기사)이 의도적으로 편향된 관점을 가지기를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의심을 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 봐야 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늘 대강 흔들리는 혼돈 속에 별들이 잉태한다, 라는 구절에서 별표를 치고 책을 덮던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읽는 것 니체의 책 이외에 <행운에 속지마라>,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인데 행운에 속지마라는 기존의 투자가 온전한 실력보다는 행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책이기에 어쩌면 위에 말한 문제의식과 통하는 맥락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