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적일까
화제작 '힐빌리의 노래'를 읽는다. 사실 좀 뻔하다. 트럼프 쇼크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화이트 트래쉬들이 어떻게 몰락했으며, 왜 준동하는지는 대중 교양 수준이다. 그들은 더이상 르포의 대싱이 아닌 연구의 대상이다. 이미 다 아는 대상을 그린 르포는 재미없다.
요즘 읽는 책들은 모두 다른 제재를 논하지만 크게 보면 '불평등'이란 주제로 귀결된다. 생산석 혁신을 다룬 '로봇의 부상', '인간은 필요없다' 이주와 도시화를 다룬 '엑소더스', '직업의 지리학', '도시의 승리', 세계화를 다룬 '폴트라인'과 스티글리츠의 책 등등. 이 책들을 돌려 읽으며 야간 사격하듯 주변시로 보다보면 힐빌리의 그 루저들이 보인다.
이렇게 지금의 문제는 완성된 작품처럼 꽉 짜여있다. 어느모로보나 불평등은 딱 떨어지는 답이고 도망칠 구멍도 없어보인다. 이제야 암담한 현실을 파악한 정도이고, 답을 찾으려면 멀었다.
석학 책을 일부러 오역해서라도 "이 상태도 좋다"고 거짓말한 어느 출판사만한 배짱이 있는 게 아니라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건 당연하다.
방법이 문제다. 세계화와 생산성의 문제라면 드라이브를 걸어 더 큰 세계화, 진전된 혁신을 수용하는 방향이 '정론'이다. 이상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나아왔던 방향으로 가속 페달을 밟는 해결책이라 하겠다. 그러면서 세금을 더 내겠다는, 역시나 익숙한 방법. 지금까지 해온 세계화, 혁신 가속을 지역적, 세계적 단위로 확대하자는, 딱 들어도 두루뭉술한 대책이다.
'해온대로, 다만 더 빠르게' 라는 이 방법은 현 체제 기득권에겐 익숙하고 편하다. 진보로 분류되는 리버럴은 실은 지금까지 수행해온 방식의 강력한 옹호자다. 리버럴 힐러리가 기득권으로 분류되고, '보수' 진영에서 브렉시트, 트럼프 등 연달아 급진적인 결정(사고?)을 주도하는 이유다.
'상상력'은 원래 사치재다. 빈곤은 상상력을 품지 못한다. 피곤한 일이고 지적 자본이 필요하며 금전적 손실도 동반한다. 그렇게 급진적인 드라이브를 결딘 체력이 없는 하류층은 앞으로 가기보단 '익숙한' 곳을 향해 후진 기어를 넣으려 한다.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우파)를 지지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이다.
진보는 변화를 견딜 체력이 있어야만 선택할 수 있다. '진보=상상력'아닌가?
'상상력은 사치재'라는 표현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파격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하위소득계층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그들은 '합리적 인간'이 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순응하며 사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죠. 이렇다보니 하위소득계층은 기득권을 위한 경제체계에 가장 순종적으로 임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논리를 따라 '보수적'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의미지만 다른 설명을 한번 붙여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