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아파트단지에서 차를 몰아 나가려고 하는데,
앞에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작은 길이라 조금지나면 비켜 주시겠지 하며
아주아주 천천히 뒤에서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인도로 안가시고 차도 한복판에서 길도 안비켜주시고 천천히 가시는 할아버지가
왠지 일부러 그러시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 뒤부터는 수많은 생각들이 이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크락션을 울릴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건 뒤에서 기다리는수 밖에 없지만
이미 내머리속에는 아주 나쁜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길 옆으로 조금만 비켜주시면 그만인걸 왜 일부러 저러시는거야...

길이 넓어지는 틈을 타서 옆으로 지나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깜짝 놀래시더니 나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신다.

보통은 깜짝 놀라는 상황이 오면 화를 내거나 가르치려고 하시는 분도 많던데
예상하지 못한 매너있는 행동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이어린 사람한테 고개를 숙인다는건 어쩌면 큰 용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짐을 가지고 길을 가시는 인기척을 못느꼈던 한분이셨다.
이 모든 상황을 나는 완전히 내맘대로 상상하고 있었던거고

그렇다...
그럴수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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