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양심수의 탄원서

in #mojajangsoo8 years ago (edited)

남들보다 일찍 태어난 주제에 (나이가 많다는 말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로 불편한 법이니, 그냥 조금 일찍 태어난 것으로 표현함을 이해하시라) 싱글로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너 결혼 안 하니?’ 우리 엄마의 기준에 따르면 독신으로 사는 것은 불효일 뿐 아니라 저출산 국가의 국민으로서 나라를 저버리는 반역 행위이자 범죄이다. 혹은 내가 노후에 깎아 먹을 세금과 연금(자발적으로 내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이런 것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지……) 등 우리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낳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다둥이 아빠인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비혼은 명백한 범죄다.

나는 오늘 이 지면을 빌어, 감히 양심수라 탄원하고자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하나 밖에 없는 오빠는 나에게 이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오빠가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옆에서 내가 달라고 조르다 울기 시작하면 아빠는 늘 동생에게 나눠주라고 혼을 내고 내가 먼가 먹고 있을 때 오빠가 달라고 하면 난 절대로 주지 않았다. 그러다 싸움이 나면 늘 아빠는 왜 동생 것을 뺏어 먹냐고 오빠를 혼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제 그가 결혼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서른이 한참 넘어서까지 했었다. 아직도 억울하다는 것이다.

나는 나름 먹을 만큼 요리도 잘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을 때만 내가 먹고 싶은 것만 한다. 입도 엄청 짧아서 먹기 싫은 음식, 못 먹는 음식은 절대로 안 먹는다. 아주 예전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있었던 일이다. 그날 점심 메뉴를 고르다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나는 각자 먹고 싶은걸 먹고 만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남자 친구가 포기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 되긴 했지만. 나의 몇 번의 연애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난 진짜 ‘쌍년’이었다.

장마철 날씨보다 더한 변덕에 바이오리듬은 또 얼마나 널을 뛰는지. 잠깐 컨디션이 좋은 날 잡아 높은 숱한 약속들은 당일이 되면 어김없이 가기 싫어진다. 나름 예의랍시고 열심히 변명거리를 만들어 약속을 미루는 행위들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아니 살고 있다. 특히 해외 출장과 텔레컨퍼런스는 아주 좋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 직업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그 어떤 종류의 ‘의식’도 싫다. 결혼식, 장례식, 칠순 잔치 심지어 명절이나 내 생일도 싫어한다. 내 컨디션이나 기분에 상관없이 꼭 그날, 특정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구속 같다라고 한다면 누구는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슬그머니 권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나처럼 관혼상제의 적합한 의복, 그에 적절한 멘트(이 단어 말고 먼가 고상한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이……)에 엄청 약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장소에서 밥 먹는 것도 싫고, 엄숙해야 할 장소에서 짐짓 심각한 척을 해야 하는 것도 싫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명절이 특별할 것도 없고, 기독교 집안이기 때문에 제사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다. 물론 제사 음식도 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의 명절은 그냥 모여서 ‘밥’ 먹고 뒹굴 거리는 노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바빠서 못 간다는 말에도 그럼 특별히 식사 준비 안 해도 되겠네. 좋았어를 외치는 엄마는 가끔 친엄마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공동 생활을 하는 사람의 그것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아닌 내 것. 내 냉장고, 내 침대, 내 컴퓨터, 내 책, 내 화장실, 내 책상 등 내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다. 내 책상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내 맥북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아무나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퇴근 후에 마시기 위해 넣어둔 벨기에산 맥주는 니 목구멍에 들어갈 운명이 아니듯. 사실, 여러 가지 물건은 기꺼이 쉐어할 수 있지만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물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건드리면 안 되는 물건 중 한집에 두 개를 둘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예를 들어 침대? 노부부도 아니고 싱글 침대 두 개 놓고 살자고 한다면…… 뻔한 서울 생활에 침대 두 개 놓고 사는 것에 찬성할 남자가 있을까?

여기까지 읽다 보면 미친x 차라리 혼자 살아라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빙고! 그것이 내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서두에 언급한 범죄보다 아주 더 심각한 진짜 범죄이다. 물론, 범죄가 성립되기 전에 내 만행이 전부 뽀록이 나 미수로 끝나겠지만……

이토록 자기 객관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들 본 적이 있는가? 위에 열거한 것보다 엄청난 대서사시만큼 내가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를 써내려 갈 수 있다. 내 인생 하나야 어떻게든 살겠지만, 타인을(남편과 자식 그리고 새로 생기는 친인척까지) 내 인생에 끼워 넣고 책임질 자신이 없다. 사실 나도 안다. 이것은 자기객관화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내 멋대로인 것을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문제는 알지만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 그냥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 지금 내 생활을 포기 또는 양보를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내 삶에 더하기는 불가능 하다는 것.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남은 양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 ‘양심수’로 살 수 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글을 접으며, 약간 비겁해져야겠다. 갑자기 이 모든 이기심과 게으름을 한번에 깨게 해줄 남자가 나타난다면 양심수 생활을 접고 갱생을 길을 걸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렇게 말하면 양심수이자 모범수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인가? 아무튼, 나는 진정한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양심수이다.

사족:
이 글을 쓰기 전에 양심적 결혼 거부자라는 말에 대해 유부남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와의 대화.
나: 양심적인 결혼 거부자라는 말 어떻게 생각해? 결혼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는 사람?
친구: 대부분 비혼자들은 그냥 지금 사는 대로 편하게 살고 싶다라는 것인데 머 양심까지 운운하냐? 너무 거창해.
나: 아니 생활 패턴도 문제고 이기적이라 양보나 타협 못하는 내 성격에 결혼은 안 맞다는 거지. 그런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망칠 수는 없다는 건데 공감이 안되냐?
친구: 그래도 오버야. 어차피 결혼하면 사람은 상황에 맞게 바뀌게 되어 있어. 너도 지금은 혼자 사는데 익숙해서 그렇지 나중에 다 적응하게 될 거야.
나: 우씨, 야 그냥 니가 나랑 결혼했다고 상상해봐.
친구: 맞아. 너 엄청 양심적이야. 그냥 쭉 혼자 살아.

  • 괜히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당분간 여러 매체에 기고 했던 글들을 수정 혹은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새로운 글 소재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분이 오시는 날까지 셀프 우라까이를 통해 지면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제 글들이 어디선가 본듯한 생각이 드시면...... 그 생각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