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30 이성적 합리적 공론의 장이 붕괴한 한국사회와 그 주역들steemCreated with Sketch.

국제정세의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이제 과거의 국제정치질서는 사실상 완전하게 이별을 고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국제정치질서가 형성되기 위한 혼란이라고 하겠다.

이런 혼란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새로운 국제정치질서를 주도하는 국가와 뒤에 따라가는 국가로 구분될 것이다.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지금 한국은 전세계적 규모로 볼 때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필자가 불리하다는 것은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즉 한국은 스스로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방향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극단적 모험주의는 모두 한국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반미도 무조건적인 반북 혹은 무조건적인 반중과 그 성격상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우 좁은 길을 선택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은 반미나 반중, 그리고 반북으로는 찾을 수 없는 미로와 같은 것이다.

한국이 자기자신을 위한 좁은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는 조건은 매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이 우리를 위한 길인가를 확인하고 선택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일방적 지지와 찬성으로는 불가능하다.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비판적 시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런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기초로 가장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정책이란 원래 찬성과 반대가 공존하는 영역이다. 반대를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은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하는 영역이다.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합리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작정 긍정적인 측면만 보거나 무작정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최근들어 급격하게 이성적 합리적 공론의장이 무너지고 있는 한국사회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문제는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지식인들이 스스로 앞장 서서 진영논리에 빠져들고 또 진영논리를 과격하게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시대에 정치인이란 일방적인 추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치지도자는 마치 군주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노골적인 아부가 횡행한다. 살아있는 권력 뿐만 아니라 죽은 권력에게도 아부를 한다. 정상적이라면 죽은 권력은 버려져야 한다. 죽은 권력이란 냉정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에서 탈락한 자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재명의 정책 중에서 지지하는 것도 있고 반대하는 것도 있다. 필자가 주로 반대하는 것은 이재명의 대외정책, 즉 미국과의 관세협상, 일본과의 관계, 조선에 대한 적대시정책과 같은 것이다. 필자가 이재명의 대미정책 그리고 대조선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재명이 처한 한계도 충분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한계를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외정책은 너무 지나치게 일방주의적이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트럭처럼 파멸로 진입하는 이재명 정권을 보면서 위태롭게 바라보면서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재명이 브레이크도 없이 질주하는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하는 합리적인 지식인 사회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단의 지식인과 유명인들이 이재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들이 이재명을 두고 외교천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역겨움을 넘어 불쌍한 느낌도 든다. 아마도 역사에서는 현재 이재명의 대외정책을 매국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과거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구한말의 친일파들은 당시에는 애국자 혹은 구국의 결단을 한 선각자처럼 평가를 받았다. 지금 이재명과 그 일파들은 구한말의 친일파와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에게 외교천재니 하늘이 낸 위인이니 하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빈곤한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이 언사는 조선의 언론에서 본 김일성에 대한 충성맹세와 비슷한 행태같다. 한국에서는 비판적인 공론의 장이 사라져버렸다. 지식인이 비판적 역할을 포기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들이 충성을 맹세함으로서 받게 되는 보상을 자신들의 사회적 직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충성에 대한 보상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금전적 댓가, 관직 그리고 진영으로부터의 인정과 안정감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