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22 위인 두사람, 이대용 공사와 황성환 선생의 경우. 의인의 등장과 삶의 행복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머리에 뚜렷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생각하고 뜻을 세운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도 수없이 좌절하는 삶을 살았다. 살아오는 과정 내내 내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나의 좌절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자신의 의지와 원칙대로 살아 온 사람은 위인이라는 평가를 해도 충분한 것 같다. 그 중에서 오늘 두분을 소개하고 싶다. 첫번째는 월남이 패망할때 교민을 보호하기 위해 헬기에서 내려 교민과 함께 하다가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던 이대용 경제공사(예비역 준장)이고, 두번째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라는 책을 쓰고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로 기소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황성환 선생이다.
이 두분은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완전히 정 반대이다. 그럼에도 두 분을 같이 묶어서 소개하는 것은 자신이 정한 삶의 원칙에 충실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충실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대용 장군을 처음 직접 만난 것은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알려진 심일 중위의 공적이 가짜라는 주장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육군 군사연구소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대용 장군의 주장에 대한 사실진위를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처음에 필자는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용 장군을 직접 만나서 말을 듣고, 각종 자료를 조사해 보니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심일의 공적은 사후에 조작된 흔적이 너무 많았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필자와 대화 중에서 이대용 장군은 국가가 온전하게 발전하고 군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거짓에 바탕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평생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해도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군인은 정직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인가?
이대용 장군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월남에서 철수하지 못하고 있던 교민 300여명을 지키기 위해 월남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미국 대사관 옥상의 마지막 헬기에서 내린 사람이 이대용 장군이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심일 사건을 위에서 요구하는대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옳은 일은 비록 보상이 없다고 해도 살아가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게 된다.
별 볼일 없는 군인이었지만 나는 심일 사건을 제대로 처리했다는 생각하나로 삶을 버틸 수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중대장과 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단 한번의 전투에서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는 부상을 당했지만 다 낫기도 전에 다시 전투현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의 삶을 들으면서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옳은 일은 절대로 외면해서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일의 공적은 거짓이다. 나는 그 일로 군대에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대용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는 내가 보기에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모시고 살펴야 하는 사람에 속한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위선자에 불과한 이유는 그들이 이대용 장군같이 정직한 사람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심일 사건을 폭로한 이후 이대용 장군은 수없이 많은 배척을 받았다.
두번째는 황성환 선생이다. 황성환 선생은 연대 법대를 나와서 젊을 때 사업을 했다.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나이 50 쯤 되던해에 그동안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수년이 걸려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라는 책을 써냈다. 한참 사업을 할때는 대치동에 100평이 넘는 저택과 재산도 가지고 있었으나 책을 쓰고 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벌었던 돈도 다 써버렸다고 한다. 미국 제국주의의 민낯을 가장 잘 정리한 책이다. 사업을 전폐하고 지금까지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다.
그런 황성환 선생이 국가보안법 찬양고무죄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황성환 선생은 벌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하는 분이다. 필자는 일전에 황성환 선생을 찾아가서 이틀을 집에서 묵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도 이대용 장군 못지 않게 자신의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런 분은 만인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사회가 발전을 한다.
어제 황성환 선생으로부터 재판기일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문장렬 교수에게 전화했다. 춘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하는데 법원에서 국선변호사를 지정해주었다고 한다. 시작장애인이라 글자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80이 다되어 가는 노인을 상대로 재판을 하기는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된 분은 국가보안법 재판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춘천에서 국가보안법 재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재정상황도 별로 좋지 않아서 변호사를 구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었다. 황성환 선생은 비록 말도 안되는 사건이지만 만일 유죄를 받으면 몇달 정도 감옥살이를 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문장렬 교수가 바로 심재환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 심재환 변호사는 자신도 이번 일을 모르고 있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황성환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심재환 변호사가 사건을 맡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은 결코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그리고 이자리를 빌어 필자의 넉두리를 들어주고 심재환 변호사에게 알려준 문장렬 교수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멀리 춘천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맡겠다고 나선 심재환 변호사에게 특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번의 면식도 없지만 이런 일을 발벗고 나서는 것은 의인이 아니면 어렵다.
오늘 아침은 그래서 모처럼 마음이 따뜻하다. 사는 맛이 나는 것 같다. 나이들어 보니 사는 것 별것 아닌 것 같다. 서로 도와주고 아픔을 같이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동안 세상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야 주변을 겨우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대용 장군과 황성환 선생 같은 위인을 만나게 된 것은 내 삶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 삶에 그런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좋은 사람 만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