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8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파시즘적 경향,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산재한 도덕적 양심적 인간의 희생적 결집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극우 파시스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이런 경향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재명 정권의 대내외 정책이다. 이재명 정권은 소외받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가진자와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에서 소외되는 계층은 이미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소외받는 노동자란 고액 연봉의 대기업 노동자가 아니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말한다. 한국의 노동자도 심각할 정도로 분화되어 이미 다른 계급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민주노총이 제대로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이재명이 반서민적 반민족적 정책, 친재벌 친미와 친일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에 대한 문제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재명이 기대와 다른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에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개인의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인 정치정치적 변화다. 여기에서 국제정치적 변화란 현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기정화, 혹은 체제개선을 하기 어려운 말기적 상황에 진입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자 한다.
물론 한국이 급격하게 극우화 및 파시스트화되는 경향에는 이재명의 개인적인 성향이 상당한 작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친재벌 친미 친일로 가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되었다는 여건도 있지만, 이재명 그 자신이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이재명이 제시한 거의 모든 정책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은 그의 능력이 국가급의 수준이 안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이재명 정권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극우 파시스트 경향이 개인의 책임과 원인이라는 측면과 함께,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라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지금 미국을 위시한 소위 서방국가들은 거의 모두 급격하게 극우화되고 파시스트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이런 경향에 가장 앞장서 있다. 일본도 그렇고 서유럽도 그렇다. 특히 서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는 점점 더 심각한 파시스트적 경향을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찌였던 반데라의 사상적 후예들이 권력을 잡고 전쟁에 나섰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형적인 파시스트-반파시스트 전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금 미국과 서방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파시즘을 위장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가 지금의 상황을 파시즘적 상황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파시즘이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나타나는 정치사조이기 때뮨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파시즘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본주의가 여유가 있을때는 자유민주주의가 되고, 경제적으로 한계에 봉착하면 파시즘이 되는 것이다. 한국과 같이 독재에 항거해서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가 지금처럼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파스즘적 상황으로 진입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무리 대중의 희생으로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생산관계의 한계에 봉착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지금의 미국은 원래 민주주의가 아닌 귀족정이었을 뿐이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퇴행적 과두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과두정보다 타락한 중우정치의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이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애시당초 한국은 귀족정이 아니었고 군사통치가 민주정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정치가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드러내는 과두정과 한국이 보이고 있는 중우정치는 그 뿌리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두정과 중우정치 모두 현실 자본주의의 한계라는 정치적 결과물인 것이다.
이재명은 이런 역사적 경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증스러운 것은 그동안 그 자신이 어려운 서민의 상징인 것처럼 포장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상황을 관찰하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 때 가장 민주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비극은 한때 가장 민주주의자였던 이재명의 강력한 지지자들이 매우 강력한 파스즘의 옹호자로 변모해간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이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나찌 독일 당시 가장 존경받는 독일의 지식인들이 나찌의 추종자이자 옹호자로 변모했다. 하이데거와 카라얀은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다.
한국의 상당수 결실한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미 파시즘 지지자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들이 평생 싸워온 가치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파시즘으로 진입하는 이재명을 지지하면서 5.18 광주정신을 언급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 이미 5.18 광주 정신 마저도 파시즘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한국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떤 파시즘이건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최종단계는 인종차별과 전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이미 심각한 인종차별 문제를 겪고 있으며 직접 이란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미국은 전쟁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지금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로부터 탈피할 수 없다. 미국은 계속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계속해서 파시즘적 상황으로 진입하게 되면 전쟁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체제의 정상에 있는 패권국 미국이 전쟁으로 돌입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말기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세계체제의 최말단국에 있는 국가는 이런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나마 한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강력한 시민사회가 존재했으나, 지금까지 오면서 모두 타락해 버렸다. 타락에 멈추기 않고 아예 적극적인 파시즘의 경향에 몸을 맡겨 버린 것이다. 한국 양정당의 권리당원 혹은 핵심당원이 모두 파시즘의 불쏘시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재 한국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두가지 정도가 아닌가 한다. 하나는 한국대중의 힘, 그리고 도덕적이고 현명하지만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인물들이 결집을 해서 새로운 정치적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 또하나는 박근혜가 국민의힘을 새롭게 규합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박근혜는 비록 탄핵을 당했으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의힘 세력의 파시즘적 경향성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만일 박근혜가 새로운 정치적 이념을 제시하고 구심점이 된다면 아마도 지금 달려가고 있는 한국의 파시즘적 경향을 막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들은 내가 박근혜를 언급하면 비난부터 하려고 한다. 나는 철저하게 현재의 상황을 내 나름대로 냉철하게 판단한 것이다. 물론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지금은 비록 산재해있지만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인물들이 결집해서 새롭게 한국이 지향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현실적 민족주의’의 대안적 가능성을 주장하고, 남북 경제안보 동맹을 주장하며, 민족 자본과 한국 대중의 공생 공영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은 필연적으로 자기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그런 모래와 같은 사람을 한쪽 방향으로 결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필자 개인의 움직임은 너무나 미약하여 실제로 의미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민주당은 전혀 가능성과 가망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의 이재명과 민주당은 파시즘의 한가운데로 진입해버렸다. 다시 돌아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글을 쓰면서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의 한국은 왜 이런 길로 접어들었을까? 그 출발점은 어디에서 부터였을까? 물론 지금 상황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소위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86세대의 몫이다. 그들은 민주화에서 파시즘으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친 목소리가 이제는 파시즘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변해 버렸다.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산재한 양심적이고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이라도 주변과 연대하기를 바란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이 언젠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