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12 신민족주의 계보, 좌파, 중도파, 우파의 단계별 화해와 결합, 최종 과업은 박정희와 김일성의 화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steemCreated with Sketch.

역사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동학난을 동학혁명이라고 평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삼별초의 난인가? 아니면 삼별초의 난인가 아니면 삼별초의 항쟁인가?

현대사와 당대사에 대한 평가도 고정적이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바뀌는 것은 당대인들이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가 하는 문제인식 때문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현대사를 넘어서 당대사에 해당한다. 당대사에 대한 평가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식 때문이다.

역사는 연결되어 있다. 여운형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봉암이 아니었다면 한국전쟁은 조기에 끝나고 김일성이 승리했을 것이다. 조봉암이 아니었다면, 박정희의 근대화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정희의 근대화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하루 세끼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를 무시하는 오만이다. 해방이후 필리핀이 한국보다 훨씬 잘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계기를 만들고 설계한 사람이 박정희다. 박정희의 독재는 개발독재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파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병폐이다. 박정희 시대는 한국에 자본주의가 들어서지도 못했었다.

한국에 파시즘이 스멀거리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이 삼성에게 장악당하면서부터였다. 파시즘은 자본이 정치를 압도할 때 발생한다. 정치가 자본을 압도하고 장악하고 있으면 파시즘은 발호하기 어렵다. 독일의 파시즘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다. 일본은 독일과 전혀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걸었다. 일본은 파시즘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었다. 군국주의를 그대로 파시즘이라고 오독하면 안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중국 공산당의 국가발전전략과 유사하고 러시아 푸틴의 국가발전전략과 유사하다. 모두 자본의 공공적 기능을 강화했다. 공사를 많이 만든 것은 당시에 자본이 형성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다른 부르주아 국가보다 훨씬 강화했다. 박정희 사후 특히 김대중이후에는 국가의 공공적 기능을 자본에게 팔아넘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벌은 규모가 커졌지만, 대중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위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재산을 자본에게 팔아넘기는 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김대중이후 민주당 세력을 민족주의 계보에 넣을 수 없는 이유다.

해방이후 한반도, 남북을 고려해 보면 한반도라고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리고 조선반도라고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야말로 코리아 반도라고 하는 것이 더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것 같다.

해방이후 코리아 반도에는 민족주의자가 압도적이었다. 당시의 민족주의자들은 이념적인 포지션이 달랐다.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좌파는 김일성을 들 수 있을 것이고, 민족주의 중도세력은 여운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같은 사람은 사실 민족주의 세력으로 보기 어렵다. 조봉암도 민족주의 중도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는 민족주의 우파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필자가 신민족주의의 계보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코리아 반도 전체가 화해하는 것은 최종적인 목표다. 최종적인 목표가 굳이 통일이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평화롭게 교류하고 도우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정치체제가 무슨 문제일 것인가?

코리아 반도가 화해하려면, 한국내에서도 화해해야 한다. 역사에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이 모두 다 녹아있다. 어떤 것에 더 주목하느냐하는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박정희가 김일성과 화해를 시도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은 포지션은 다르지만 둘 다 민족주의자였기 때 문에 가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7.4남북공동성명이 서로를 속이기 위한 협잡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코리아 반도의 화해를 위해서는 우선 한국내의 화해와 결집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민족주의의 계보에 여운형 - 조봉암 - 박정희를 놓은 이유다. 여운형과 조봉암 그리고 박정희를 화해시키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화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박정희와 김일성의 화해도 불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의 독재와 김일성의 독재를 어떻게 다른가? 김일성의 독재를 인정하고 박정희의 독재는 부정할 것인가? 박정희의 독재는 용인하고 김일성의 독재만 부정할 것인가?

결국 박정희와 김일성의 화해를 위해서 우리는 한국내에서 여운형 - 조봉암 - 박정희의 역사적 화해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기초가 박정희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이전에 그런 맹아적 형태의 발전전략이 존재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에 불과하다. 역사는 결과에 의해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윤보선의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세상이었다. 윤보선과 당시 민주당 정치세력의 친일은 용인할 것인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는 대중의 혁명이 친일파에게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해도 틀리지 않다. 4.19는 뻬앗긴 혁명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바라보고 싶은대로 바라보면 안된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면해야 역사는 우리에게 비로소 제대로된 교훈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는 것이다.

다시한번 정리하자

코리아 반도에서의 민족주의자는 좌파 김일성, 중도파 여운형과 조봉암, 우파 박정희로 위치 지을 수 있다.
우리는 제1차적 과업으로 한국내에서 중도파와 우파의 화합과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한국에서 민족주의의 미래는 없다.

제2차적이자 최종적인 과업은 민족주의 좌파, 중도파와 우파의 화해와 결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은 우선 1차적 과업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가 과거를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현재와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