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6 한중정상회담에 대한 양국 공식 보도의 온도차
2026년 1월 5일 베이징 한중정상회담에 대한 양국의 공식 보도는 서로 달랐다. 외교란 사진에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회담 이후 공개된 한국 청와대의 브리핑과 중국 외교부의 보도자료는 양국이 서로를 바라보는 입장과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브리핑은 업무 보고서에 가깝다. 회담이 90분간 진행됐다는 시간표, MOU가 14건 체결됐다는 숫자, 문화·콘텐츠 교류의 “점진적 확대”,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자는 선언이 나열된다. 불법조업 단속을 당부했고 서해 구조물 문제에 대해 “건설적 협의”를 하기로 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공동의 이익이라는 점을 재확인했고 중국의 “건설적 역할 의지”를 확인했다는 말도 덧붙는다. 문제를 제기하되 충돌을 피하고, 요구를 하되 결론을 남기지 않는다. 국내 여론과 관료적 성과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절충의 문장이다.
반면 중국 외교부의 보도는 이 회담을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중국은 이 만남을 세계 질서의 흐름 속에 배치한다. 시진핑 주석은 세계가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심오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했고, 중국과 한국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여 년 전 일본 군국주의와 싸운 공동의 기억을 불러내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주의에 반대하고 다자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말은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미국을 가리킨다. 한국은 중국의 주변국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중국은 대한국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고 선언한다. 이는 동등한 협의의 언어가 아니라 질서를 설명하는 언어다.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에서 드러난다. 한국이 강조한 서해 문제와 불법조업, 구조물 문제는 중국의 보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은 이를 분쟁으로 인정하지도, 양자 현안으로 격상시키지도 않았다. 관리 가능한 하위 사안으로 흡수해 버렸다. 한반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를 중요하게 말했지만 중국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라는 더 큰 틀로 덮었다. 한반도는 중국의 전략적 공간 속 일부로 재배치되었다.
가장 노골적인 차이는 대만을 둘러싼 정세에서 나온다. 중국 외교부 보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국이 이번 회담의 성과로 반드시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공식 브리핑에는 이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재명은 분명히 하나의 중국 지지를 말했으나 대한민국의 공식 보도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됐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미동맹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현실 속에서 한국 정부가 감히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이 이중적 행태는 예속의 결과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실용외교’라 부른다. 그러나 그 실용의 방향은 어디인가. 미국과의 동맹을 전제로 한 채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조잡한 기술에 불과하다. 중국은 회담에서 보호주의 반대와 다자주의를 말했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의 반중 공급망 재편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단 한 줄의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중국의 15차 5개년 계획이 “기회”라는 표현은 수용했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반도체 통제와 기술 봉쇄에 대한 입장은 흐릿하다. 균형을 잡은 것이 아니라 선택을 회피한 것이다.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중국은 항일전쟁과 승전 질서를 호출하며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에 대한 양국의 협력을 주문하였으나 한국은 간송 전형필과 석사자상 기증이라는 문화 교류를 전면에 내세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를 기껏 문화재 기증으로 덮으려는 시도다. 불편한 진실을 피해 가는 외교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더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난 힘들 것이라 본다. 교류와 협력은 늘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표면일 뿐이다. 중국은 한국을 억지로 미국의 질서에서 빼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기의 테두리에 최대한 묶어 적으로 만들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려 했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국에 매인 채 중국과의 마찰을 관리하는 것을 실용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종속이다. 외교는 흥정이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을 말하지 않는 실용이란 결국 강자의 문장을 받아쓰는 기술일 뿐이다. 바로 이재명 정부의 외교가 그렇다. 한국의 미디어는 명비어천가를 부르며 중립과 균형의 성과로 포장할 것이다. 그러나 직시하자.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이미 선택된 외교다.
정태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