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25 이란전쟁 56일차, 미국과 서구적 지배질서의 분기점으서 이란전쟁의 역사적 의미steemCreated with Sketch.

교착상태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국제정치적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라는 형식적 용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질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서구중심이다. 신항로개척이후 시작된 서구의 팽창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화되고 제국주의적 지배체제와 피지배체제가 형성되었다.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수세기가 흘렀으나 이런 기본구조는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19세기 이후 사회주의가 등장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패했다. 한번 실패한 시도와 제도를 다시 역사의 무대위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는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그 본래적 속성상 폭압적일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장과 자본주의는 다른 존재이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시장은 존재했다. 시장은 인간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시장의 존재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필자가 이런 문제의식을 현실적으로 해결한 국가가 중국이고 러시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누누히 언급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체제와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 세력이다. 글로벌 사우스가 어떤 국제정치적 관계를 지향하는가를 명징하게 설명하고 짚어내기는 어렵다. 그들은 ‘다극화’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다극화란 현상을 의미할 뿐이지 내용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마도 다극화를 주장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상호호혜와 주권존중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상호호혜와 주권존중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상호호혜와 주권존중이란 거추장스런 포장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전쟁이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근본적 변혁을 초래하는 지진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전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주의 체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노골적인 제국주의 정책이다. 자유주의란 제국주의의 포장에 불과하다. 자유란 지배국가에게만 적용되는 선택적 가치에 불과하다. 피지배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민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등장하고 나서 미국은 폭압적인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트럼프 개인의 성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보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지금의 트럼프가 수행하고 있는 정책이나 바이든이 수행하고 있는 정책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촉발시켰고, 트럼프가 이란전쟁을 일으켰을 뿐이다.

바이든의 민주당 행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먼저 공격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직접 이란을 공격한 트럼프보다 좀더 세련된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세상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하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런 현상은 미국 금융자본의 존재방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미국 금융자본은 국가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맑스가 본 국가는 전적으로 서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 국가를 자본의 수단으로 볼 수는 없다. 동양에서 국가는 서양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있었다. 동양에서의 국가운영 방식은 자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권력자의 정치적 의지에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서양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맑스와 서양의 철학자들은 동양의 국가형성과 운영방식을 폄하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동양적 국가운영방식은 서양보다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의 대결구도를 동서양의 역사적 분기가 아닌가 하는 전망도 하고 있다. 서구식 자본주의적 역사경로가 더 이상 유용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동양적 국가운영 방식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적 지배하에 고통받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국주의 지배의 질곡에서 벗어나면서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역사적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탈제국주의 국가는 부르키나 파소이다.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벗어난 부르키나 파소의 발전은 비약적이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서구자본주의 팽창이후 그들에게 강요된 족쇄의 결과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이 일제해방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일본제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들 주장하는 자들을 필자는 일본의 간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안병직은 일본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국민의힘은 극적인 정책적 변화를 보였는데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민족주의적 성향에서 이명박이후 노골적 친일 친미적 성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물론 전두환과 노태우의 시기를 민족주의적 성격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시기 전두환과 노태우는 미국편향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점처 원래적 보수의 성향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민족주의에서 외세의존으로의 전환의 갈림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은 보수적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없다.

원래 보수적 정치세력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리고 진보적 성향은 국제주의적 성향과 함께 국제적 연대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개념은 제국주의의 본국과 식민지국가 사이에서 전환이 발생한다. 피지배국가에서 보수적인 정치성향은 외세지향적 성격을 띠고 진보적 정치세력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는 것이다. 피지배집단에서 민족해방운동은 진보운동이었다.

현재의 한국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더 민족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 제국주의적 지배체제하게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앞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모인 국가들은 방식은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 가장 정의에 충실한 제국주의 체제하에 편입되는 길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국이 지향하는 방식, 그리고 현재의 미국 금융자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19세기적 제국주의적 질서의 재판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능순으로 먼저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지배체제에 편입되는 국가들은 국가적 자율권을 상실하고 사실상 강력한 식민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현재의 미국적 지배체제를 ‘신식민주의’라고 일갈했는데, 본질적으로 푸틴의 정의는 틀리지 않았다고 하겠다.

문제는 앞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어떤 방식의 국제질서를 만들어낼 것인가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관찰된 현상을 보면 과거에 보았던 제국주의적 지배는 분명 아니다. 국가별로 각자의 역량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국제질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경쟁이 강압에 의한 지배라는 방식을 띠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란전쟁은 이런 점에서 역사진행의 분기점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로 보인다. 필자는 이란전쟁으로 미국적 국제체제의 존재양식이 더 이상 작옹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진보를 자유의 확대라고 보았다. 헤겔이 보았던 자유의 확대란 서구적 틀안에서 인민의 자유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에 있어서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담보해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유럽은 당시까지 봉건적 질서하에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체제하에서 국가는 그야말로 주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유의 확대를 진보라고 본 헤겔의 명제는 옳다. 서구적 개인의 자유에서 전세계적인 국가의 자유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국가적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 한국의 주권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필자가 기회주의적인 인간으로 보았던 이재명이 전작권 환수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부족한 안목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이 공개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제까지 정치지도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정치지도자는 당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재명이 신속하게 전작권 환수를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그런다면 나는 그를 평생 업고라도 다니겠다.

이란 전쟁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필자는 지금과 같은 교착 상태를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기간이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는 점점 더 균열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