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5 유럽의 겨울, 정태현 글
윈터 이즈 커밍.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원한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은 2026년 겨울을 앞두고 다시 에너지 위기의 문턱에 섰다. 이번 경고의 핵심은 천연가스 저장량이다. 보도에 따르면 8월 1일 기준 유럽의 가스 저장 시설 충전률은 57.11퍼센트에 그쳤고, 이는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보통 유럽연합은 겨울철 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10월 1일까지 저장률을 90퍼센트에 가깝게 끌어올려야 하지만, 현재 추세로는 75퍼센트 아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저장고가 비어 간다는 뜻이다.
러시아 가스프롬이 발표한 성명은 6월과 7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유럽의 가스 저장고의 부족분이 120억 세제곱미터에 달한다고 밝혔다. 7월 31일 기준으로 저장량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7.3퍼센트 감소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유럽 3대 경제국의 상황도 유럽 평균보다 나쁘다. 유럽 산업 중심부가 먼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가스프롬은 이 수치가 추운 겨울에 안정적인 공급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분석가들은 이번 위기의 핵심 변수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본다.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면서 유럽의 가스 가격이 배럴당 700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 비정상적인 숫자는 에너지 시장이 전시 수준의 충격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페르시아만 지역의 액화천연가스 LNG 수입도 차질을 빚고 있고, 전 세계 LNG 수출량이 20퍼센트 감소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유럽 에너지 규제 협력 기구 EEER은 여름철 저장고를 채우는 비용이 막대해질 것이라고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요구하는 10월 1일 이전 충전 목표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하다. 필요한 가스량은 최소 680억 세제곱미터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양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이번 겨울은 단지 추운 겨울일 뿐 아니라, 가장 비싼 겨울이 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가스프롬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만 해도 유럽 최대의 천연가스 공급자였다. 약 50년에 걸친 파이프라인 투자를 통해 유럽 시장 점유율을 40퍼센트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서방의 러시아 제재 이후 판이 바뀌었다. 유럽은 러시아 가스 의존을 줄이려 했으나 그 결과 가스프롬의 유럽 수출은 2021년 2017억 세제곱미터에서 2024년 약 150억 세제곱미터로 급감했다. 유럽은 공급처를 다변화했다고 자부했지만 그 대가로 더 높은 가격과 더 불안정한 시장을 떠안았다.
전쟁과 제재, 해상로 통제, 시장 경쟁이 한 덩어리로 얽힌 지정학의 문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전 개입으로 그 대가를 먼저 치렀다.
호르무즈 해협은 더 잔인하다. 세계 LNG와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가 흔들리면 유럽은 국제 가격결정의 약자가 된다. 유럽이 아무리 제재와 외교를 말해도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길목이 막히니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은 제재를 “규범”이라고 부르지만, 시장은 규범이 아니라 물류와 선박과 항로 위에서 움직인다. 항로가 위협받는 순간 유럽의 겨울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생존 문제로 변한다.
아시아와의 현물시장 경쟁도 치열하다. 서아시아발 공급 차질이 생기면 먼저 돈을 더 낼 수 있는 쪽이 가져간다. 일본, 한국 등 아시아와 물량 경쟁까지 겹쳐 유럽은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이번 위기는 에너지 외교의 위기이자 금융 질서의 위기이기도 하다.
2026년 겨울의 유럽은 단지 추운 대륙이 아니다. 가격이 오르면 가계는 난방을 줄이고 기업은 생산을 늦춘다. 생산이 줄면 물가가 다시 흔들린다. 에너지 위기는 곧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유럽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전보다도 산업의 둔화와 사회적 불만의 확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은 러시아만 탓하거나, 이란의 책임을 말한다. 시장의 일시적 불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의 뿌리는 더 깊다. 유럽은 오랫동안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에 의존했고, 에너지는 시장에 맡겨 두었다. 그 결과 외교는 군사동맹에 종속되고, 에너지는 국제정세의 충격에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
이번 겨울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유럽은 스스로 “규범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정작 에너지 현실에서는 가장 취약한 쪽이 되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고 중동의 불안정에 노출된 뒤, 유럽은 더 높은 비용을 치르는 길로 들어섰다. 겨울은 짧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26년 유럽의 겨울은 경고다. 제재는 상대방만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유럽은 역사상 가장 춥고 비싼 겨울을 맞게 되었다. 성벽 밖의 위협만 탓하며 스스로를 가둔 유럽은 자기의 겨울 앞에서 가장 먼저 떨게 되었다.
Thank you for sharing on steem! I'm witness fuli, and I've given you a free upvote. If you'd like to support me, please consider voting at https://steemitwallet.com/~witness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