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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대흥사 표충사를 거닐며
종교 지연 학연은 ... 언급하기 거시기 한 부분 입니다만, 몇자 적어 봅니다.
- 승병, 우리 민족사에서 수많은 전란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 승려들이 참전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승려 3만이 맞서 싸웠고, 화랑의 수신계로 세속오계(임전무퇴와 살생유택)를 만든 이도 진평왕 때의 원광법사입니다. 통일 후의 신라는 별도의 승병을 양성했습니다. 후고구려의 궁예도 그러한 승병이 군벌로 발전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고려때에는 군제에 항마군이 있었습니다. 몽골의 침략 때에 적장 살리타이를 꺾은 김윤후도 승병입니다. 무신 집권 시에도 문벌귀족과 연결된 승병은 무신 정권의 가장 큰 견제 세력이였습니다.
- 그러한 전통이 적어도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했던 조선 전기까지도 이어왔고, 휴정이나 유정과 같은 명망있는 고승들이 이러한 승병을 규합하여 왜적에 대항했지 싶네요. 또한 조선의 군제가 진관체제(Area Defece )에서 경제적인 제승방략체제(Man to Man)로 바뀌면서 지역방어에 공백이 생기는 곳에 승영사찰을 지어 승려를 통제하고 안보를 맡긴 부분도 있습니다.
- 이러한 의승방번제는 영정조때에도 혁파하지 못하다가 갑오개혁 때에서야 폐지됩니다.
- 이러한 조선의 오랜 승병 전통을 알고 있는 총독부는 1911년 사찰령을 공포하고 조선의 전 불교사찰을 총독부 직할에 두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권상로(후에 동국대 초대총장) 같은 친일부역자들이 나서서 '임진왜란 때 승병처럼 승려들이 대동아 전쟁에 지원해야 한다'며 '참전이 성불'이라며 식민지 조선의 불교계를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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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조용하지 않은 절집을 보면 참으로 거시기 합니다. ....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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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말로만 호국 불교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런 말을 할 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