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unlimited] 오늘따라 햄버거steemCreated with Sketch.

in #stimcity6 months ago (edited)



"어서 와 어서! 이러다 기차 놓친다니까."



소년은 한참이나 뒤처져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콜라가 넘쳐흘러 어쩔 줄 몰라 하다 보니 뛰지도 달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걷는데, 문제는 햄버거와 폼클렌징이었다.



소년은 반드시 폼클렌징이 있어야 세수를 할 수 있단다. 예민한 피부 때문이라고. 하지만 소년은 마법사의 권고는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피부에 집착하느라 마법사의 말을 한 귀로 흘렸기 때문이다.



"반드시 100밀리 이하 용기에 담아오게 안 그러면 공항 보안검색대에 압수당할 테니까."



소년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겠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압수를 당했다. 테러 위협에 보안 검색이 강화된 파리 공항은 소년의 120밀리짜리 폼클렌징을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내용물은 절반밖에 없는데. 그래도 용기는 120밀리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비의 거품이 되어 소년의 발목을 휘감았다. 소년은 폼클렌징에 사로잡힌 것이다.



소년은 새로 들어서는 동네에서마다 '파마시'를 외쳤다. 유럽의 화장품은 약국에서 파니까. 그러나 좀처럼 100밀리짜리 여행용 폼클렌징은 발견되지 않았다. 간혹 있더라도 가격이 비싸 좀처럼 소년은 덥석 쥐지를 못했다. 소년은 저소비녀와 같은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



그렇게 로마의 기차역까지 구입이 유보된 폼클렌징은 거품을 점점 뿜어내더니 소년의 사고를 장악하고는, 마침내 두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어 버렸다.



"아.. 비싼데요."



소년은 기차 대기시간을 틈타 역사 내 '파마시'에 들러 폼클렌징이 있냐고 물었지만, 점원이 내놓는 것들은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었다. 소년은 미적미적 이것저것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할 수 없네요." 했다. 또 포기한 것이다.



마법사는 아침을 먹지 못했으니, 바게트라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소년은 갑자기,



"오늘은 햄버거를 먹죠."



하는 게 아닌가. 마법사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감싸는 걸 느꼈다. 실은, 마법사는 늘 햄버거를 먹고 싶었지만,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년을 배려해 메뉴 선택지에서 언제나 제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년이 발견한 '파마시' 옆에는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법사는 순간 햄버거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직관이 '오늘은 아니라고'하는 바람에 다른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소년은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햄버거 주문대에서 기차 플랫폼까지는 꽤나 멀다.



"아, 분명 주문대에서 제가 시간을 봤을 땐 12분이 남아 있었는데 말이죠."



기차를 놓친 것이다. 마법사는 간신히 도착했다. 그러나 문은 닫히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마지막 타이밍에,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저 멀리서 콜라를 들고 엉거주춤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움직임으로 간신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클렌징 거품에 휩싸여 방향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품은 두 사람의 시간마저 잡아먹어 버렸다.



"기차를 놓쳐 보긴 난생처음이네. 타이밍의 마법사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죄송해요. 제가 폼클렌징 산다고 들리지만 않았어도."

"그거야 어쩌겠나. 폼클렌징 없으면 세수를 못 한다며. 오히려 문제는 120밀리야. 왜 100밀리 이하여야 한다고 내가 당부한 얘기를 잊은 거지?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네.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낭패가 여정 전체의 기쁨을 반색해 버린다고. 그게 쌓이면 자네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아질걸세. 그렇게 삶의 기쁨과 점점 멀어지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그 20밀리 때문에 말이야."



마법사는 소년에게 문제는 폼클렌징이 아니라 일관되지 않은 예민함이라고 말했다. 예민하다면 그 예민함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무던하다면 무엇이든 문제가 없을 테고. 사람들은 모두 그 중간 어디선가 무엇에는 예민하고 무엇에는 무던하다. 그러나 삶의 여정은 일관되어야 한다. 맥락과 흐름에 따라 예민은 연속되어야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무던하다면 우주가 도울 것이다. 쓰레기 더미 옆에서 자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왜 잘 먹지도 않는 햄버거가 오늘따라 땡긴 거지? 내 직관에는 분명 오늘은 햄버거가 아니었단 말이지."

"그럼 다른 걸 먹자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자네가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언제나 햄버거를 먹고 싶었고."



마법사는 종종 직관을 무시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무시한 대가는 치러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년이 폼클렌징을 사기 위해 기차를 놓쳤다면 그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까. 평상시의 마법사처럼 플랫폼에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년이 좋아하지도 않는 햄버거를 먹으려다 기차를 놓친 것은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다. 물론 햄버거는 맛있었지만.



마법사는 기차표를 다시 예매하며 헐떡이는 소년에게 또 물었다. 왜 좋아하지도 않는 햄버거가 먹고 싶었는지.



"그러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햄버거가 먹고 싶더라구요."

"파마시 옆, 그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지 못했어도 햄버거가 먹고 싶었을까?"

"그건.. 아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견물생심 했군요."

"그리고 우리는 기차를 놓쳤지. 자네는 파마시에서 원하는 폼클렌징을 살 수 있었어. 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포기했지. 번번이. 욕구를 억압한 셈이야. 그리고 넘쳤지. 억눌린 압이 햄버거로 튀어나와 버린 거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억압한 대가를 지불케 한 거지. 원하는 것을 포기한 대가로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우리는 기차를 놓치는 낭패를 경험하도록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대체 뭘 얻었나?"

"교훈을 얻었네요. 쩝, 이 햄버거는 막상 먹으려니 맛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기차도 놓치고."

"괜찮네. 난 먹고 싶던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됐으니까. 이 햄버거 유독 맛있구만."



마법사는 아침부터 뜻한바 없는 뜀박질을 하느라 허기가 졌는지 햄버거를 와구와구 입에 밀어 넣었다. 기름기 가득한 육즙이 수염을 타고 흘렀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행 다니며 먹어본 햄버거 중 최고의 맛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소년은 한 입 베어 물더니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소년은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은 원하는 것을 포기한 대가로 원하지 않는 것으로 위장을 채워야 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헐레벌떡 뜀박질을 하고 기차마저 놓쳤다. 100밀리 권고를 우습게 여긴 결과는 피곤을 쌓았다. 여행에 집중하지 못한 채 파마시를 찾는 데 계속 신경을 분산시켜야 했고 저소비 관념을 번번이 발동시킴으로 여행을 비루한 일상으로 계속 전환시켰다. 그렇게 쌓인 피곤함은 마침내 여정을 뒤집어 놓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교훈을 얻었다.



그 후 소년은 클렌징 없이도 세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클렌징 없는 세수에도 소년의 예민하다는 피부에 아무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아직 무엇에 예민하고 무엇에 무던해야 할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법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_ [마법행전 2부 9장] 오늘따라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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