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척]7월-스파게티의 본질은 '면'

in #ta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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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직후, 청와대에 파견을 가게 됐다. 집권초엔 날마다 마감시간에 닥쳐서 두세번씩 커다란 브리핑이 나와 그날 짜여져 있던 지면을 온통 흔들었다. 청와대에 팔려온 몸으로서 일과 중 유일한 낙은 점심 때 청와대 1진기자 선배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다녔던 맛집 순례길이었다.

자타공인 미식가인 청와대 선배는 모팀 팀장일 때, 정규 회의가 있는 월·목요일마다 팀장 법인카드 한도를 훌쩍 넘는 금액을 후배들 입에 털어넣었다. 그 때는 그 저녁이 낙이었다.

청와대에 있을 때, 하루는 후배가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삼청동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아, 물론 우리가 먹기에 좋은 곳은 많았지만 청와대 선배의 성에 차는 곳이 없었단 얘기.

그는 또 말없이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냥 따라갔다. 좀 많이 걷는다 싶었다.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쯤 그 곳에 도착했다. 헌법재판소 맞은편에 있는 '로씨니'라는 곳이었다.

요즘 이탈리안레스토랑들처럼 세련된 곳은 아니었다. 흰 리넨 테이블보가 덮여있어, 오래된 예식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식당 한 켠은 어두침침하기까지 했다.

스파게티 가격의 적정선은 어디쯤일까.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어보고, 직접 요리도 해 본 사람이라면 적정한 가격을 잡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이 집 음식은 싸지 않다. 스파게티 한그릇에 1만 7000원~2만 1000원이라고 네이버에 나와 있다. 나는 눈치껏 '매콤한 살라미를 곁들인 올리브오일 소스의 스파게티'를 골랐다. 1만 7000원.

음식이 나왔는데 비주얼이 참... 대충 만든 것 같았다. 같이 나온 다른 메뉴들을 넘겨다보니 올리브오일 소스를 쓴 스파게티는 한번에 조리해서 나눠담은 뒤 토핑만 각기 다른 걸 뿌린 것 같아보였다. 양념을 한 흔적이나 자작한 국물이라도 있길 기대했는데 그릇 위엔 딱 면, 마늘, 살라미, 루꼴라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면, 마늘, 살리미, 루꼴라 뿐이었다. 조리하면서 쓴 올리브오일은 면과 마늘에 스며든 딱 그만큼 뿐으로 그릇 바닥에 흥건할 정도가 아니었다. 루꼴라, 살라미는 그냥 반찬 같은 것이었다.

스파게티는 '면'이다. 호주 멜버른의 한 레스토랑 헤드셰프로 일하는 친구는 언젠가 "소스가 어떻고, 토핑이 어떻고 간에 결국 스파게티는 면 요리"라면서 "면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젠가 엄청 유명한 셰프가 했을 법한 말을 했다.

로씨니는 면이 맛있는 집이다. 양념으로 감싸고 토핑으로 포장한 맛이 아니라 그냥 면 맛. 사실 그릇 안에 면 외에 먹을 것도 없다. 그 적당히 쫀득한 면 맛을 즐기며 간간이 루꼴라와 살라미, 마늘을 찍어 먹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바닥에 고여 있는 오일도 단 몇 방울 뿐.

나는 지난 기념일에 또 로씨니를 찾았다. 특별한 날이라고 코스를 시켰지만 관심 대상은 오로지 면이었다. 셰프 추천 스파게티가 나온다고 했는데 똑같았다. 똑같은 면에 올리브, 할라피뇨, 방울토마토를 뿌린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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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엔 스테이크도 있었고, 물론 매우 훌륭했다. 주인장이 와인에 남다른 안목이 있어 하우스와인도 좋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여기선 올리브오일 스파게티를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소스 스파게티도 맛이 있을 테지만, 올리브 스파게티를 포기하고 다른 걸 먹어볼 용기가 아직은 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주인장 솜씨에 반한 대기업 회장인지 사장인지가 자기네 회사 건물에 들어와서 임대료 걱정 없이 장사를 하라고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만일 사실이라면 그 회사 제품도 믿고 써도 될 것 같다. 그 회사가 라면회사이기 때문이다. 면 맛을 아는 사람이 경영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로씨니는 삼양사 1층에 있다.


맛집정보

로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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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 55


[아닌척]7월-스파게티의 본질은 '면'

이 글은 Tasteem 컨테스트
믿고 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참가한 글입니다.


테이스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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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는 면을 삶을 때부터 육수에다가 삶고, 올리브유에다가도 마늘을 비롯해 기타 등등 재료를 볶아서 향을 입힌다고 하더라구요. 그다음에 면이 그 올리브유를 빨아들이게끔 볶아준다네요 ! 아주 어릴땐 소스 흠뻑 들어간 파스타가 맛있었는데, 성인이 되고나서는 올리브유랑 기타 재료만 들어간 파스타가 아주아주아주 좋아요 ㅠㅠㅠ

흰색 테이블보라니~
그래서인가요? 고급져 보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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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콘테스트에 응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hiho님의 포스팅으로 테이스팀이 더 매력적인 곳이 되고 있어요.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길 바라며, 보팅을 남기고 갈게요. 행운을 빌어요!

기승전 삼양 광고가 되었군요 ㅎㅎㅎㅎ

어찌어찌 그렇게 되나요 ㅋㅋ 삼양라면을 참 좋아합니다만.

저돕니다
삼양라면은 south korea 최고봉입니다

스테이크 먹고싶습니다ㅜㅜ 보팅맞팔신청하고갑니다!

저는 스테이크가 아니라 스파게티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포스팅을 읽지 않고 기계적으로 남기는 댓글은 사양합니다.

오우 이론곳에서 먹는맛은 ... ^^

정말 면이 중요하다고 느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기본이 가장 중요한 가 봅니다. 면이라 하셔서 오땡땡 인줄 알았는데 삼땡이었군요 ㅎㅎㅎ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ㅋㅋㅋ

개인적으로 오뚜기 면발이 괜찮았다는 얘기였습니다 ㅎㅎㅎ

아 ㅋㅋㅋㅋㅋ 오뚜기 면발 좋습니다. 인정.

면이 맛없으며 소스든 토핑이든 소용이 없죠ㅎㅎ
고오급스럽게 먹고 싶을때 가보겠습니다!

역시 시호님 짱!!! 테이스팀도 사진보단 글이 더 길다니!!! 여윽시!!!

먹느라 사진을 찍을 새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