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Ways : 배배 꼬인 중동과 美 국무장관의 해임, 그리고 한반도 문제

in #tooza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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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전격 해임되면서 세계 최강국이자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외교 방향성이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혹자는 트럼프의 무능하고 제멋대로인 인사를 비난했고, 또 혹자는 틸러슨의 후임으로 지목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 상당한 대북 강경파임을 들어 이제 막 평화체제의 물꼬를 튼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해한다. 일단 현재로써는 트럼프와 틸러슨은 중동 문제에서의 극심했던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과연 중동에서는 최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A Song of Sand and Blood


정치를 할 때도 그렇고 외교를 할 때도 그렇고 전쟁을 할 때도 그렇지만, 상대방을 손쉽게 조종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태는 바로 상대방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이다. 상대방의 힘이 여러 쪼가리로 나뉘게 됨은 물론이고, 작게 분열된 상대방의 여러 갈래를 내 쪽으로 포섭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대방이 내가 아주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석유의 소비국들은 중동이 갈갈이 분열된 채로 늘 일정 수준 이하의 저강도 분쟁이 일어나는 환경을 가장 원한다. 때문에 그들은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 간 수십 만 명의 사망자를 낳을 동안 전혀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고, 그 후 궁지에 몰린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이 질서를 깨려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이라크를 철저히 응징해 중동의 약소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중동에는 하나의 '맹주' 가 등장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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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체결된 서구 열강의 중동 분할 협정인 '사잌스-피코 협정' 의 지도. A지역이 프랑스의 영역이었고 B지역이 영국의 영역이었다. 이렇게 지역을 분할하여 맹주의 등장을 막는 방식은 중동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수니파 극단주의 그룹인 IS는 중동에서의 수니-시아 간 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이었다. 당연히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국들은 IS 격퇴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쿠르드 페쉬메르가와 이란 IRGC(혁명수비대) 세력까지 끌어들여야 할 정도로 상황은 급했으며, IS를 몰래 지원하던 사우디와 서방은 사이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IS가 격퇴되고 시리아 내전이 정부군의 승리로 끝난 올해부터 발생했다.

이라크-시리아, 즉 중동의 핵심인 고대 초승달 지역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이 거의 제거되자 이제 이란을 필두로 한 시아파 세력이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나선 것이다. 특히 이란은 이라크 지역에서 혁명수비대 소속 민병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갖은 핑계를 대며 이라크 내에 세력을 확대하려 애쓰고 있다. 겨우 IS를 제거했더니 이제 중동에 새로운 맹주가 생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Trump Administration


IRGC는 단순한 이란의 정예 무장조직이 아니라 이란의 경제권까지 상당수 쥐고 있다는 점은 미국에게 있어 더욱 큰 문제이다.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서방 기업들의 많은 비즈니스가 이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비즈니스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IRGC 였기 때문이다. IRGC는 이란 내 100개 이상 기업들의 대주주이며, 이들은 주로 원유/건설/인프라 등의 업종에 해당되고 때문에 IRGC 산하 기업들이 주로 서방과 거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연간 순이익은 120억 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IRGC는 오바마 시절 핵 협상을 통해 얻은 경제적 자유로 중동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오바마의 이란 핵 협상을 '실패한 작품' 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Iran Nuclear Deal
Source : The Globe Post

이란 핵 협정의 당사자들. 이들은 외교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2015년의 협정이 이렇게 빨리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트럼프가 이란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사우디와 다시 손을 잡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것이다. 아마 이 문제에 있어서는 힐러리가 당선이 되었거나 오바마가 3선(???)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는 '핵 협상 파기' 를 내세우긴 했으나 이는 아무말이 오가기 쉬운 선거 운동 당시의 레토릭이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핵 협상 파기보다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업 및 늘 해 오던 거친 언어 사용을 통한 위협에 몰두하고 있다. 핵 협상 전부를 갑작스레 폐기하고 다시 경제제재로 돌입하면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의 입장에서는 중동의 헤게모니를 쥔 하나의 세력이 등장하는 것만큼 악몽이 없다. 이들이 미국에 붙느냐 중국에 붙느냐에 따라 석유 수급의 장기적 안정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바마 때에는 이란과 가까워졌다가도 트럼프 때에는 다시 사우디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오바마가 특히 인도주의적이고 비핵화의 전도사라서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것이 아니며, 트럼프가 특히 사이코패스라서 핵 협상을 파기하겠다느니 이란은 각오하라느니 하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Tillerson's Problem


그러나 이러한 외교 행위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사우디를 끌어들여 이란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 자체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향이지만, 이를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들까지 모두 흐트러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신호가 바로 2017년 상반기 사우디-카타르의 단교로 시작된 카타르 사태였다. 물론 상기 밝혔듯이 사우디는 미국에게 있어 중동 제 1의 맹방이자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이며 미 국채 보유량도 많다. (지난 2017년 8월 기준 세계 12위이다. 출처 : Statista)

Top 10 Holders of US Treasuries
The Biggest Buyers of Us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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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StatistaSource : World Atlas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카타르가 중동에서 미국에게 '덜 중요한' 국가도 아니었다. 일단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는 미국의 중동 군사전략을 총괄하는 미 중부사령부가 주둔해 있다. 또한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공군기지와 함께 미국의 중동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알-우다이드 공군기지가 카타르 영토 한복판에 박혀 있다.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에서 거의 4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중동에 실제로 거주하며 비즈니스를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당연히 트럼프와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란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의 맹방들을 뭉쳐도 모자랄 판에 사우디와 카타르가 으르렁대는 것을 오히려 팝콘을 먹으며 구경만 하고 있었던 데다가, 갑자기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어나운스는 상황을 더욱 좋지 않게 몰고 갔다. 본디 미국 보수층의 중동 외교 노선은 수니파 왕정국가와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이란이나 이라크 같은 시아파 공화국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동맹국들의 도움을 얻어 인도양과 카타르에서 발진한 항공력이 공습을 가하고 그 뒤를 혹독한 경제재제가 따르는 방식이었다. 사담 후세인 치하 이라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안정적인 외교 구도를 모두 뒤틀어버린 것이다.

Rex Tillerson
Donald Trump
TillersonTrump
Source : WikipediaSource : Wikipedia

때문에 틸러슨과 트럼프의 대립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를 새 국무장관에 내정하며 틸러슨과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문제는, 폼페이오의 이전 행적을 살펴보면 상당히 기회주의적인 면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Mike Pompeo and Korean Peninsula


마이크 폼페이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본디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마르코 루비오의 선거 캠프 인사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한 때 트럼프를 일컬어 "그에게 투표했다가는 우리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라는 상당히 강도 높은 비판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자 폼페이오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대선 선거 운동 기간 중 트럼프와 잦은 견해 차이로 삐걱거렸던 러닝메이트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와 트럼프 사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트럼프의 신임을 얻어 트럼프의 당선 직후 CIA 국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복심으로 불리며 (물론 자기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의 특성상 그도 언제 내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반도 문제 및 중동 문제에서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려 하는 트럼프의 폼페이오 인선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폼페이오가 강경파냐 온건파냐 라는 것은 이제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트럼프는 국내에서 상당히 인기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40.5% 수준이다. 출처 : FivethirtyEight) 때문에 그는 한편으로는 기존 지지층을 공고하게 하면서 눈에 띌 만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트럼프는 전자의 경우 예루살렘으로의 대사관 이전을 통해 보수 개신교 백인층의 지지세를 확고히 하고, 후자의 경우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무력화를 통해 달성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작업에 최대한 속도를 내기 위해 사사건건 부딪히는 틸러슨을 전격 경질하고 "예스맨" 폼페이오를 인선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정치인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동보다도 인식 수준이 낮다. 그러나 북한은 핵과 ICBM 이라는,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 가지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 중 상상을 초월하는 대북 강경 발언을 하는 인사가 꼭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인간은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나를 해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때 두려움이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트럼프의 상황과 폼페이오라는 인사의 성향을 볼 때, 틸러슨의 경질이 북미관계를 갑작스럽게 악화시킬 가능성은 낮다. 또한 현재 남-북-미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측 인사 중 서훈 국정원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우리가 잘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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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소식 잘봤습니다.

즐거운 월요일 밤시간 보내세요

마지막에 서훈 국정원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아, 혹시 다음 글이 서훈 국정원장으로부터 시작하나요? ^^)

보통은 외교를 할 때 외교부 라인은 외교부 라인끼리, 정보기관은 정보기관끼리, 무관들은 국방부를 통해 각자 매칭되는 부서와 함께 움직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국무장관 틸러슨이 트럼프와의 의견 충돌로 인해 저리 겉돌았으니,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간 외교전에서 강경화 장관이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죠.

같은 맥락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및 서훈 국정원장 두 분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면담을 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는 것입니다. 미 국무장관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니 트럼프가 신임하는 폼페이오 측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훈 국정원장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 폼페이오가 이제 국무장관까지 됐으니 서 원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답변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렇군요. '매칭'이라는 개념(?) 형식(?)을 몰랐으니 저에게는 의미가 와닿지 않았던 거였네요.
답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