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화 칼럼] 서른,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80년대를 끝낸 잔치의 성격
90년대 초,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시들이 낯설었다. 그 당시 내가 접하던 시와는 다른 것이었다. 문체도 그 울림도 달랐다. 참여시가 말하는 거친 낙관도 없었고, 서정시가 주는 상처를 감싸는 친절함도 없었다.
최영미 시집에 대한 문단 평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소위 운동권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서정시인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그가 80년대에 사회적 혁명을 꿈꾼 사람이란 점이 문제였다. 한때 혁명의 꿈을 같이 꾼 자가 물러나서, 진중하지 못한 시를 썼다. 아직도 강고한 억압의 굴레에 있는 엄중한 때에 사적 사랑이나 갈구하다니. 더 위험한 것은 혁명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였다. “잔치는 끝났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따라서 그의 시에 표현된 사랑은 오염된 사랑이었고, 낙관주의를 흔드는 절망으로 해석되었다.
그런 비판과 달리, 80년대를 경과하여 90년대를 맞는 청춘에게 그의 시는 새로운 메시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개인 절망이 시대 절망임을 외치던 시대에, 시대의 소명과 무조건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욕망과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용해하여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시는 이념과 공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개인, 개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인은 엄숙한 도덕주의로 자신의 결핍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결핍을 드러냈다.
또한 시인은 남성의 전유물이 된 표현, 어휘에 대한 해방을 외치는 새로운 여성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인의 시, ‘마지막 섹스의 추억’에서 비친 시인의 태도는 거침이 없는, 여성시인의 깃발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의 거침없는 시정신도 드러내지 못한 주제가 있었다. 바로 성폭력의 역사이다. ‘서른,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인의 용기가 가닿지 않은 곳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에 대한 고발 글 중 일부이다. 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판되기 전후 어느 때, 시인이 목격한 추행장면이 담겨있다. 독자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 자리에 동석한 문인들은 침묵했다. 고은의 추행도, 그런 추행을 기행으로 넘기는 것, 기행을 침묵하는 것도 당시 문화였다. 저항시를 쓰던 시인도, 거침없는 자유시를 쓰는 시인도 성추행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최영미 시인은 최근 페이스북에 자신이 87년 자신이 경험한 운동권 내부의 성추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시인은 이러한 성폭행에 대하여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다. 상처를 상처로 인정해주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공개할 수 없음을 알았다. 운동권 내 성추행 문제가 적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 사회적 대의 우선주의에 묻혔다. 성역이 없이 저항을 할 것 같은 시인도 인식의 벽을 뚫지 못한 80-90년대의 사회적 인간이었으며, 그의 ‘서른, 잔치는 끝났’는 80년대 후반의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더 한 치욕도 참아야 했다. 이러한 치욕은 여성 시인만 겪은 특수한 경험이 아니었다. 80-90년대부터 현재까지 여성은 성희롱, 성추행 등 굴욕적인 환경에 수시로 노출되었다. 그 경험의 성격이 성폭력인지 그 당시는 몰랐으나, 불편하고 수치스런 경험을 여성은 최소한 하나 둘씩 안은 체 생존하고 있다. 이런 좌절, 피해의 경험은 침묵을 지키는 임계점을 넘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혁명, 사랑의 이질적 요소들을 섞은 시로 낯선 경험을 들려주던 시인은 2005년에 출간한 ‘돼지에게’에서 기득권층, 권력에 대해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그리고 여성은 “자신을 보호할 껍데기가 없는 진주는/심심한 돼지와 한가한 여우들의 즐기는 간식”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시에 돼지와 여우는 누구일까?
미투 운동에 힘입어, 시인은 ‘괴물’에서 직설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 시인은 그렇게 소리치고 도망쳐 나왔다.
최영미 시인은 고은만이 아니라 전체 문단의 문제를 지적한다. “제가 등단할 무렵에는 여성 시인을 기인 취급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겠지만, 아직 '괴물 주니어'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어디 문단의 문제뿐이겠는가? 사회 곳곳에, 우리 일상에 덕지덕지 더럽게 남아 있는 오물을 걷어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잔치를 우리가 끝내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 그 잔치의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나? 거대한 말의 잔치에 작은 말이 숨을 죽이고, 수치심을 안고 다른 잔치로 옮겨졌다. 새로운 잔치에도 차려진 음식만 다를 뿐 문화는 별반 변한 것은 없었다. 그 속에서도 돼지와 여우는 여전히 주인공이고, 돼지와 여우 틈에서 진주들이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여성의 손으로 이제 잔치를 끝내야 한다. 난장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건네는 술잔을 내리쳐야 한다. 그렇게 잔치는 파해야 한다.
이 싸움은 최영미 대 고은의 진실 공방투쟁이나, 어느 시인의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대면하는 싸움이다. 상처가 상처로서 인정받지 못한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음지에서 신음하는 상처, 내팽개친 여성의 몸을 살려야 한다. 잊어야 하는 과거가 아니라 잊게 강요당한 과거를 소환하여 우리의 미래로 연결해야 한다.
누구는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성폭행, 누구에게는 이름도 잊혀지고, 장소도 가물가물한 치욕의 상황을 떠올리자. 그 상황을 보내는 의식을 하자. 혼자 아니면 여럿이 그 상황, 그 인물에 자신이 받은 경험을 증언해보자. 그것으로 우리가 치유되지는 않지만 욕이라도 퍼붓자. 우리의 욕이 가해자와 가해 집단에 전달되지 못한다 해도, 그 분노를 내뿜는 힘으로 최영미를 응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