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의 여성은 양반 다리로 앉았다
어느 지인이 결혼 후 아내에게 요구한 첫 번째 요구는 일본 여자처럼 꿇어앉지 말라는 거였다. 가장 편안하게 양반자세로 앉으시라. 남녀 평등은 몸의 자세까지 같아야 하는거다.
이거 요구하고 또 하고 대략 2~3년 걸렸다.
호칭도 그렇다. 남자는 선비라 하고 여성은 그런 거 없다. 이거 남녀 함께 선비라 부르자. 홍산문화 시절에 남자가 여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조각상이 발견된다.
성도 그렇다. 아들은 남자 성을 딸을 여자 성을 따랐다. 아들이 여자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後高句麗 세운 궁예가 아버지 성은 김씨였으나 어머니는 高句麗 출신이었다. 그래서 궁예(弓裔; 弓氏의 후예)라 하고서는 高句麗 건국을 내세우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들었다.
궁예의 어머니는 해상왕 장보고의 딸이었다. 張保皐의 張은 高句麗 마지막 칸 寶藏王의 후손이었다. 張은 말갈 말로 궁파(弓巴), 궁복(弓福)을 高句麗-高麗(渤海)말로 '큰 가, 큰 바'로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고자 張이라 한 것이다. 이 궁파(弓巴)에서 弓裔가 나온다.
이는 전원철의 『고구려-발해인』칭기스칸에 실려 있다(2권 187, 213, 310쪽). 보장왕 → 장보고 → 궁예 → 칭기스칸의 DNA가 이어진다.하여간 우리 겨레는 딸은 어머니의 성(姓)을 따랐다. 궁예는 보장왕의 6세 후손이었다.
우리의 옛 그림을 조사하여도 여성들은 양반 자세로 앉았다. 꿇어앉는 버릇하면 그게 익숙할지 모르지만 천만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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