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햇볕의 힘
한 시간 반 꽉 채운 아침 운동을 마치고, 아침을 먹고, 집을 치우고, 점심을 먹는 사이사이 책을 읽었다. 며칠 같은 주제의 책을 집중해 읽다 보니 피로함과 지겨움이 함께 들었다. 요즘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 따뜻하다. 밖은 춥지만, 내 방에는 벌써 봄이 온 듯하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책상에 앉았다. 왜인지 오랜만에 음악을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포티파이의 선곡은 별로였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져 적당한 음악인데도 좋게 느껴졌다. 연달아 들은 두 곡이 좋았다. 전부 가벼운 음악들이었다. 오랜만에 키보드를 켜 그 곡의 코드 몇 개를 따라쳤다. B Key의 곡을 반음 위인 C Key로 들었다. 아직도 반음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원은 켰지만 딱히 칠 곡이 없었다. 지금 듣는 곡을 카피해볼까 했지만, 변화가 많아 코드를 찾는 일이 귀찮게 느껴졌다. 그 곡의 처음 두 마디를 계속 반복해서 쳤다. 코드 세 개뿐인 단순한 진행인데도 계속 틀렸다. 스무 번 쯤 치니 익숙해졌다. 곡이 익숙지 않은 덕에, 연주하다 보니 원곡은 잊혀지고 멜로디와 화성만 남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즉흥 연주를 하게 됐다. 건반과 그것을 누르는 손의 반발감을 느끼자마자 아, 내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무슨 버튼을 누른 것처럼, 생각도 못 했던 감정과 생각이 물밀듯 내 안에 들어섰다. 가장 익숙한 C Key로 한참 연주를 하다, 자주 그렇듯 귀와 손이 이끄는 A Key로 조성을 옮겼다. C Key에서 A Key로 변하는 갑작스러운 전조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뭐랄까, 그 흐름은 이미 밝은 방 안으로 눈이 부실 정도의 한낮의 해가 들어서는 풍경을 닮았다.
연주하며 놀랐던 것은, 체력이 좋아짐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체력이 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후로는 둘 사이의 관계성을 살면서 처음으로 체감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고질적인 관절염 증세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운동 루틴 중 하나인 손가락 스트레칭으로 손이 많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시작한 목적은 연주를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꾸준히 해오면서 연주보다는 손의 편안한 감각에 더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변화가 더 갑작스럽고 강하게 느껴졌다.
증상이 더 심했던 왼손은 근 몇 년 했던 연주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가벼웠다. 요즘은 상체 운동도 함께 하는데, 그 때문인지 아래 음역(베이스)을 버텨주는 손목의 힘이 이전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터치도 훨씬 강해졌고, 조금만 세게 치면 손목이 나갈 것 같던 증상도 없었다. 며칠 집중해 연습하면 내 최대 연주 속도를 넘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연주 문제는 연습 부족이 아니라 운동 부족이었을까? 연주에 상응하는 근육 하나하나를 느끼며 연주를 이어갔다. 어떨 땐 팔이, 어떨 땐 손목이, 어떨 땐 상반신 전체가 연주를 지탱해주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은 파도처럼 오고 간다. 음악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때도 있고, 굳이 음악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굳이 내가 음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조차 없이 피아노를 쳐다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잊고 살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씩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음악을 향한 열망이 솟구치고, 다시 또 이 길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것이 나의 길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대체 왜 시작하지 못한 채로 생각만 많아지는 걸까... 그런 답답함이 들면서도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 끝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직관을 따라 열심히 걸어가기로 한다. 그 길에 피아노가 함께 하기를,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나를 벅차게 하는 음의 세계가 종착지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