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contest 번외편] 말하는 건축 - 시티 홀
평소 영화 포스팅을 올리다보니 kr-contest에 건축분야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다음 포스팅은 심사 결과에 상관없이 건축분야의 영화를 올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책처럼 지금부터 이야기 할 영화도 생소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건축 - 시티홀
정재은 감독의 전작 '말하는 건축가'를 재미있게 보아 바로 이번 영화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가 정기용의 말년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정기용은 기적의 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건축가입니다. 또한 전북 무주의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서울신청사가 지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다큐멘터리입니다. 앞선 영화가 건축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영화는 건축을 진행하는 과정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빛도 좋지 않은 개살구
서울시민이라면 지나가면서 한번쯤은 서울신청사를 봤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각자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1세기 전에 지어졌을 구청사 뒤에 낯설게 자리잡은 신청사 덕분에 2년뒤에 지어진 동대문디자인프라가 조금 덜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신청사.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했으리라. 겉으로는 화려한 모습에 맛이 좋을 것이야 생각 했는데 막상 까놓고 보니 그저 그런 과일이였다. 화려한 빛을 생각하며 과도한 비료와 정성을 들이는 과정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날아왔다.
과정의 건축
한 가족이 살 단독주택을 짓는대에도 수많은 의논과 합의가 이루어진다.
하물며 서울시를 대표하게 될 신청사를 짓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기존의 청사는 오래되기도 하였고 서울시의 규모에 비해 작기도 하여 모든 부서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사무실을 임대해 뿔뿔이 흩어져 있다. 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기획은 조순 서울시장때부터 이루어 진다. 고건시장의 임기를 지나고 MB때 가닥이 잡히는가 싶더니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마침내 사업승인이 이루어 진다. 디자인르네상스, 디자인서울. 이름은 참 그럴싸하다.
첫 삽을 떴으니 이제 삽을 넘겨 줄 이를 찾아야 한다. 이때 턴키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구본준 기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설계 따로 시공 따로 감리 따로 이런식으로 다 분야가 중요한 건축의 전문분야들이거든요. 이것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창조적인 견제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있느냐 그런 삼각의 구도를 이뤄야 하는데 이것을 다 한꺼번에 한명한테 설계도 당신이하고 시공도 당신이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일광방식이 턴키라는 것이거든요. 이 턴키라는 방식이 얼핏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인 관점이에요. 하지만 문화적으로 턴키는 틀림없이 비효율적이에요."
한마디로 설계보다는 시공사를 우선으로 하는 방식이다. 공모전을 열어 여러 건축사무소에서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시공을 할 건설사가 건축사무소를 선택하여 서로 파트너가 되어 건물을 짓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턴키라는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는 듯 하다. 영화를 보다보니 우리가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보는 투시도와 조감도가 바로 이러한 양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으로 보기에는 엄청 화려해 보인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짓는 아파트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지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너무 어렵네요.
수많은 안 중에서 삼성물산과 삼우건축사무소의 아이디어가 선택된다. 턴키방식의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나타났지만 선정되고 나니 또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옆 덕수궁이 발목을 잡는다. 문화재 바로 옆에는 고도제한이 걸려 그림과 같이 높게 지을 수가 없게 되어있다. 이 부분을 문화재청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 부분은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사업은 한차례 무너진다.
전의 과정이 건설사가 우선이 되었다면 다음의 과정은 건축가를 우선하게 된다.
서울시에서 네 명의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competition을 개최한다. 유걸, 박승홍, 류춘수, 조민석. 건축계에서는 굵직굵직한 작업들을 보여준 이들이다. 류춘수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하였고, 조민석은 다음 제주 본사를 설계하였다.
앞에서 본 삼성물산의 조감도와 별 차이를 못느낄 수도 있다. 시공사는 껍데기와 뼈대를 중요시 한다면 건축가들은 내용을 우선시 한다. 삼성물산의 건물은 어디에 갖다놔도 무방하다면 건축가들의 건물은 서울시청과 서울광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냈는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조민석 건축가
"일단은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턴키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래서 조건도 사실 되고 나면 디자인을 주고 넘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 프로젝트 안해요. 그런대도 불구하고 예외의 조건들을 만들었던
건대. 아마도 네 사람 다 트로이목마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공공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이 그러한 불합리한 시스템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마음은 거기에 있거든요. 저희한테 이런 기회가 안주어집니다. 대형건설사 아시잖아요 그런 시스템(턴키를 말하는 것 같다). 마음이라도 표현을 하자 설계비 주니까. 그래서 마음껏 했죠."
당선은 아이아크의 유걸의 안이 채택된다.
세레모니의 건축
오세훈 서울시장
"저는 서울시 신청사가 서울 아니 대한민국 공공건물의 신기원을 여는 건축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에서는 한국의 전통미와 미래의 상징성을 함축한 설계안대로 완공이 된다면 충분히 서울의 랜드마크가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임 시장은 첫 삽을 뜨며 이렇게 말하였다. 랜드마크라는 말이 참 거슬린다. 첫 삽을 뜨고 준공식에서 컷팅행사를 가지며 자신의 업적을 드높히는 생각들을 정치인들은 하는 것 같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다른 도시와 다르게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자체가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랜드마크의 기능을 하기에는 유걸의 안이 적격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껍데기만 보았을 것이다.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나 생각들은 자세히 듣지도 않고 가장 화려해 보이는 건물을 짓겠다 다짐했을 것이다.
어머님이 누구니
세빛둥둥섬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다. 설계공모를 내고 아이디어를 받고 시공사의 주도로 공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의 생각은 배제되고 시공사의 입맛에 맞게 설계가 변경되고 껍데기만 그럴싸한 건물이 지어지게 되었다. 처음의 설계안을 제시한 건축가는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과정을 서울 신청사도 반복한다. 둘의 공통점은 설계와 시공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는 애초의 설계대로 짓기보다는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생각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설계를 손봐가며 짓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본래의 기획안은 사라지고 고아가 되어버렸다. 어머님이 사라졌다.
유걸 건축가가 완공후 사무실직원들과의 MT에서
"서울 시청을 만들 때 그것은 공공건물이니까 시민들이 어디에서든 접근 할 수 있는 시청을 만들면 좋겠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생각이다. 시청이 시청 앞 광장과 똑같은 성격의 공간이다. 그래서 시청광장이 수평 공간이라면 시청사는 수직정 공간. 이제 계획설계때와 지금과 같은 것은 폼이다. 현상안과 똑같이 만들어라 그것이 지상명령이였어. 그래서 어떤 것은 보면 현상안에 있던 막 그려논 선들이 그대로 있는 것이 있어요. 측면으로가면 디자인이 달라요 사선들이 많다고. 안에 있는 볼이 튀어나온 부분도 있어요. 측면의 디자인은 내부 공간을 노출시키는 것. (중략) 컨셉이기 때문에 디테일까지도 그것을 표현을 하려고 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그것이 디자인 디벨롭먼트야. 면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 아니라고, 의도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지. "
싸움의 연속
쫓겨났던 어머님이 다시 돌아왔다. 총괄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여러 이해집단들이 등장한다. 발주처인 서울시, 유걸 건축가 사무소, 시공사, 인테리어회사.
건축가의 생각이 너무나 컨셉슈얼하다. 디테일이 너무 어렵다. 그리는 자의 생각과 만들어 갈 자들의 생각들이 부딪친다. 어제는 웃었지만 오늘은 얼굴을 붉힌다.
왜이리도 어려운 건물을 그려놓았을까.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극 초반에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서울시와 시공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간쯤 되니 건축가의 생각이 고집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최윤경 중앙대 교수(신청사 컨셉디자인 공모 코디네이터)
"저는 심사위원은 아니였지만 유걸 선생님의 안 중에서 가장 독특했던 것이 콘서트홀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 콘서트홀은 서울시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서울시민 전체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고 상징과도 같은 것이죠.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배치시켰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건물 전체를 상징적으로 나마 열어줬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장 어떤면에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안이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큰 파도가 밀려올 것 같은 모습을 한 이유는 분명 있었다.
건축가의 사과
신청사가 완공되었다. 개살구는 터져버렸다. 여기저기서 욕을 많이 들었다.
완공 후 건축가는 그 동안 함께 일했던 이해당사자들을 찾아가 사과한다. 그 동안 괴롭혀서 너무 미안했다고. 자신의 고집을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고.
"내가 시청을 만든다 그러면 내가 서울을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내 생각이 있잖아요. 아 이렇게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아 그 생각이 맞다 동의한다.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내 생각이 마이너리티 오피니언이거든요.
개청식이 열린다. 방명록을 쓰고 자리로 갔지만 그의 자리는 없다. 앞의 자리는 귀빈들의 자리라 앉을 수가 없다. 그는 귀빈이 아니다. 설계자에요라고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귀빈들이 몰려온다. 과정의 건축에 그들은 없었다. 과정의 건축에 함께한 이들이 멍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현 시장이 건축가의 이름을 언급해주는 것을 위안거리로 삼아야 할까.
서울시 소영수 주무관
"저희들이 잘못한 부분은 질타를 받아야 하고, 잘한 부부은 칭찬을 받아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아요."
과정의 건축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너무도 많이 발생했다. 그들은 완공후에 사라진다. 이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판단은 시민들이 하지만 저 이상한 건물이 들어서게 된 과정은 볼 수가 없다.
"나는 집을 지어놓고 애들이 보여주는 리액션이 제일 재미있어요. 애들은 공간에 들어오면 벌써 머리가 막 돌아가 보고 막 두리번 거리고 이거를 내가 어떻게 추리를 하지 바빠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논다고. 근데 이제 어른들은 들어와서 어 이게 무슨식이지 어 여긴 가도 되는 곳인가 이거를 파악할라고, 그래서 굉장히 긴장한다고. 나는 건축을 보고 어린애들같이 특히 시민들이 마음대로 쓰면 제일 좋겠어. 와서 오르락 내리락 만져도 보고 차보기도 하고 그렇게 쓰는 사람이 많으면 아 나는 참 행복할 거에요."
건축가의 마지막 소회가 제일 와 닿는다. 독특하고 이상하게 보였던 건물의 컨셉이 이 말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행정가들의 눈에 비친 상징성과 건축가의 상징성은 달랐다. 랜드마크를 지으려던 이들과 서울광장의 연속을 살리려던 이들의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현실판 미생
감독은 건추전공자들에게 보여주려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담고싶었겠지요. 그래서 이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에 대한 영화로 볼 수도 있고, 사회에 대한 영화로도 볼 수 있으며, 직장에서의 고충을 다룬 영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보는 이가 제목을 말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나의 건축에는 정말 많은 이해관계자가 물려있네요. 뭔가 큰건물 하나가 지어지는 건 마치 기적처럼 느껴져요.
그러하더군요. 공공건축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오..이런 영화도 있네요.
전 플랜트건설 쪽이라 미학과 의미보다는 비용 성능 효율성을 따지는데,
미학 즉 상대적 의견들이 녹아들어가 함께 일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단 생각도 드네요.
영화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 같은가봐요.
네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플랜트쪽은 효율성이 더 우선하겠네요.
카일님이 보시면 또 다른 점을 느끼실 것 같아요.ㅎㅎㅎ
접근하기 어려운 귀한 정보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