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INT] 2018년 겨울 블록체인의 혹한기를 말하다 - (2/2)
안녕하세요. 블록체인에 대한 칼럼 및 설명을 작성하는 @kilu83 COSINT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블록체인 이야기」(https://goo.gl/TDPAJD) 이후 일년, 그간 우리 사회엔 블록체인 광풍이 휩씀과 동시에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ICO 토큰의 대부분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거라던 예견이 너무 빨리 찾아와 황망할 정도이지요. 이 시점에 블록체인이 지향했던 오래전 미래를 다시 가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화폐와 인플레이션, 가치에 관한 담론을 상기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부산 블록체인 3회 밋업에서 「블록체인, 자본문명의 창조적 파괴」의 주제로 진행할 강연 내용을 풀어쓴 내용입니다. ^^
전편 바로가기: https://bit.ly/2rCcxOv
2018년 겨울 블록체인의 혹한기를 말하다 - (2/2)
비트코인의 미래, 좀 더 정확히 사토시 비전의 이상향을 알아보기 위해선 먼저 "화폐"와 "가치"에 관해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인 발행을 2100 만개로 고정시키기로 결정한 이유나, 서브프라임 당시 미 정부가 인위적 신용 창출로 위기를 넘긴 방법이나 그 이면엔 화폐 가치의 통제권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기성 정부의 신용 창출은 순수한 노동으로 화폐를 획득한 사람들의 가치를 훼손시킵니다. 열심히 일해 받은 이번달 월급 100 만원이, 정부의 통화 팽창 정책으로 실상 50 만원 상당의 가치로 전락하게끔 만드는 게 "초인플레이션"의 민낯입니다. 만약 통장에 1000 만원을 넣어두었다면 100% 인플레이션 기준으로 500 만원 가치로 반토막나게 됩니다. 이런 행위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죠. 단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서서히 진척시킬 뿐입니다.
게다가 통화 팽창의 수혜가 돈을 처음 손에 넣는 지근거리의 금융가들에게 돌아가는 건 이 시스템의 숨겨진 불공정입니다. 대개 돈이란 게 처음 증가되었을 땐 상품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다가, 뒤늦게 돈이 풀리며 상품 가격을 올리게 되거든요. 돈을 가장 먼저 얻는 사람들은 아직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가치를 향유하고, 마지막 즈음 누군가가 그 돈을 월급으로 받을 시점엔 이미 인플레이션이 반영된(가치가 하락한) 꼴이니, 똑같이 100 만원을 벌어도 같은 가치가 아니게 되는 것이 신묘한 마법처럼 보입니다. (지금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도박이기도 하고요. ㅎㅎ)
여하간 이런 구조를 통칭해 "이자 시스템"으로 명명합니다. 중앙 은행이 통화를 발행하는 명목으로 이자를 받음으로써 돈이 융통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선 최초 0원인 상태에서 1만원이 시장에 풀렸다 가정했을 때, 누군가는 1만원의 이자를 갚아야 하는 마이너스섬 게임이 펼쳐집니다. 1만원의 이자는 어디서 구하냐고요? 은행에서 다른 누군가가 1천원을 빌려 이자를 갚습니다. 물론 그 1천원에 이자를 또 누군가는 내야하는게 문제지만요. 빚을 빚으로 갚는 무한루프입니다.
이런 이자 시스템은 자본 문명의 근원인 "개인(individual)"과 "소유권(property)"에 기초합니다. 돈 또는 돈에 상응하는 가치를 주고받을 어떤 사람이, 돈이나 돈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재화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갖고 있어야만 돈을 빌리고 이자를 갚는 등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합니다. 산업혁명, 철도혁명, 석유혁명, 전기혁명, 과학혁명, 통신혁명 이면에는 토지권, 지적재산권, 사업허가권 속에는 달콤한 꿀을 좇는 사람들의 욕구들이 함께했지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생산성을 높이고, 다른 이보다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고, 보다 획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노력들은 우리 삶을 풍요과 편리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상품이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또 노동자의 가치가 시간에 대비한 노동력으로 환산되면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잉여가치의 자본화, 인간소외 및 물신숭배의 현상이 나타났거든요.
그 이전 시대에는 물건 속에 그 어떤 사람의 혼이나 역사가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지어준 신발, 건너집 아주머니가 직접 짜낸 우유는 단순히 신발 하나, 우유 한컵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의 신성한 노동이 담긴 소중한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발과 우유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 그 안의 노동자는 사라지고 말지요. 대신 신발과 우유의 가격이나 그 상품 자체의 브랜드가 자리를 대신합니다. 얼마나 가성비 좋은 상품인지, 또는 얼마나 그 브랜드가 나의 권위를 올려주는 지에 따라 세상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런 경제적 활동을 매개하는 가장 근본의 수단은 바로 "화폐"였습니다.
화폐는 곧 가치의 척도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말인 즉슨 화폐 발행을 좌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쥐었다는 의미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 월급을 200 만원 올렸다 한들, 금융가들이 신용 팽창으로 통화량을 4배 증폭시켜버리면 실질적으로 제 노동력의 가치는 1/4 토막 나는 꼴이니까요. 사토시는 그런 금융가들의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고자 했고, 제3자(은행같은...)가 불필요한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 "가치"란 건 뭘까요? 혹자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누군가의 가치를 도둑질했다 주장하고, 인플레이션이 없는 화폐를 구상하여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포부는 많은데, 정작 그 "가치"가 뭔지를 따져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토시가 지키고자 했던 그 가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경제적 가치, 사회적 가치, 인본적 가치 등등 가치란 단어는 어느 곳에도 잘 어울리게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가치란 단어가 워낙 포괄적이어서 구체적 정의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어떤 기업의 금전적 기대 수익을 가치라 말하는 한편,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물려준 오래된 시계에도 가치를 부여합니다. 단어로는 같은 가치인데 사뭇 같다고 여길 수 없는 두 대상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이 주제에 관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가치를 정의했습니다. 하나는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어떤 것" 이고 나머지 하나는 "남들이 의미있게 여긴다고 믿는 어떤 것" 이지요. 할아버지의 유물 시계는 나에겐 가치롭지만 남들에겐 가치있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인 반면, 어떤 기업의 금전적 기대 수익은 남들이 의미있게 여긴다고 믿기에 나도 그것이 가치롭다고 생각하는 속성의 것입니다. 여기에 보편적 원리나 자연법, 정당성 같은 복잡한 주제들이 엮여 사회적, 정치적 가치의 담론까지 확장되지만 어쨌든 큰 틀에선 앞서 두 가지 관점이 복합되어 "가치"란 것이 정의됩니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의 경제적 행위에는 필히 "가치"란 것이 개입된다는 점입니다. 경제 행위는 다른 말로 물물 교환이라 표현할 수 있는데, 사람 사이에 재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호 공정하다 또는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선 각자의 가치가 맞아야만 합니다. 둘 혹은 어느 한쪽이 아무 가치를 못느낀다면 그 거래는 이루어지기 어렵겠지요.
그리고 전통 양식에 유지하는 원시 부족민들을 관찰해 본 바 물물 교환을 주선하는 가치는 "내구성이 높을수록", "상징성이 부여될수록", "교환이 용이할 수록" 선호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합니다. 응당 어떤 가치가 오래도록 퇴색되지 않아야 좋을 거고,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면 더 좋겠고, 또 잘게 나누어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 사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니까요. 반대로 쉽게 사라지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고, 교환하기엔 버겁거나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써야한다 상상해보면 쉽게 납득이 되는 대목입니다.
현행 화폐가 딱 저 기준에 부합합니다. 썩어서 사라지지 않고, 남들도 인정하면서, 거스름돈으로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신용화폐는 국가 법제도에 기대어 상징성을 흉내냈을 뿐, 원래 의미의 상징성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앞서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인간소외와 물신화 현상 때문에 물건이나 화폐 속에 상징성(혹은 역사성)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지요. 사기꾼이 코흘리개에게 훔친 만원이나 내가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받은 만원이나 사람들에겐 똑같은 만원으로 취급받습니다. 참 별 거 아니어 보이는데 화폐 안에 상징과 역사가 담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회의 조직 방식이 상이한 형태를 띄게 됩니다.
이제 비트코인 이야기로 되돌아봐보죠. 비트코인은 화폐 혹은 소중한 가치를 담아내는 도구로서의 기준에 어느 정도로 부합하나요? 내구성, 상징성, 교환용이성을 정의했을 때, 내구성은 99점, 상징성은 50점, 교환용이성은 1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쓰는 법정화폐는 어떠할까요? 내구성은 99점, 상징성은 50점, 교환용이성은 99점 정도여 보입니다. 일단 이것 만드로도 법정화폐가 비트코인보단 우월하군요. (점수의 정도가 중요한건 아니니 퉁치고 넘어가주세요. ㅎㅎ)
하지만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측면에서 보자면 둘 다 적절한 도구는 못됩니다. 비트코인은 그 속성 상 사회적 확산에 큰 장벽이 있고, 법정화폐는 장난질 치기 좋습니다. 비트코인도 마땅한 대안이 못되고 법정화폐는 역사적으로 붕괴를 반복해왔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화폐에 새로운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로 주장합니다. 실은 화폐라고 부르기도 애매합니다. 사람들이 그걸 쓰면 쓰는거고 아니면 아닌 것데, 제가 화폐라 정의하는 게 앞뒤가 안맞거든요. 어쨌든 앞서의 기준을 상기해보면 새로운 가치의 힌트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과, 비트코인이 담보하지 못한 교환용이성을 높이는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전자는 Non Fungible Token 의 아이디어에서, 후자는 via PUF 의 물리적 기술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지요. 이 두 가지 아이디어와 기술이 접목되었을 때,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한 것 못지 않은 화폐의 퀀텀 점프가 이루어질 것이라 예견하고 그에 동참할 이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비트코인이 제3자의 개입 없는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 실현 가능함을 증명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화폐가 지닌 가치의 근원을 고찰하여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담는 것, 그리고 mass adoption 의 사회적 확산을 전제한 그에 걸맞는 거버넌스(커뮤니티)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신가요? 근시일 내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By 정유표 of COSINT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 COSINT에 게시되는 포스트를 통해 모아진 모든 스팀달러는 불우 이웃에 기부하거나 스팀잇 발전에 기여하는 스티미언분들 혹은 밋업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비트코인의 한계를 넘는 화폐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신뢰를 어떻게 담보하고 키워 갈 것인가....
휴머니즘 코인이 되는 건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보팅하고 갑니다~
이미 카드를 사용하며 생활하는 시점에서 수익보다 몇배의 지출을 하며 이자를 상납하고 있습죠.. ㅡㅜ 흐규
근시일내에 소개 하신다고 하니 뭔가 준비하고 계시군요...
굉장히 궁금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