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in #kr7 years ago

당신은 술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당신이 떠난 후 이어질 이야기들, 당신을 빼놓고 얘기할 수많은 뒷담화,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빠지면 당신만 무리에서 떨어질 거란 공포심에 3차, 4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그녀는 불면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성격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지적인 동시에 겸손하며, 사려 깊은 동시에 냉철하고, 일도 잘하지만 옷도 잘 입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냉철하지도, 지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항상 거절을 두려워하며 오해에 쩔쩔맸다.

그녀는 누군가 화가 나 있으면 ‘혹시 나 때문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어느새 그 사람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혹은 요구하지도 않은 해명을 하고 다니며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사람 앞에서 ‘그게 아니고…’라며 더 많은 말들을 펼쳐놔야 했다.

그러나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런 자신의 약점을 누군가 알아차렸으며, 속으로 경멸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꿔보려 했다. 그녀는 변명만 하고 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해를 견디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더 외로워야만 가능한 것인지.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뭔가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곤욕을 치르곤 했다. 누군가와 통화할 때, 그녀는 저쪽의 숨소리, 머뭇거림, 말투와 어조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녀는 ‘이 사람이 지금 정말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인지, 미안해서인지, 내가 만나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인지, 진짜로 그렇게 하자고는 못하겠지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것인지, 예의상 그렇게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그녀는 ‘그쪽이 편한 곳에서’나 ‘그쪽 편한 시간에’라고 대답한다.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배려하고 있지만 자신이 배려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해야만 했던 말들은 잘 못하면서, 하지 않아도 좋을 말들은 잘한다. 만약 누군가와 밤새 술을 마셨을 경우, 그녀는 먼저 일어나겠다는 말을 못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그만 일어나자고 할 경우, 그녀는 속으로 ‘이 사람 여지껏 지겨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이 한없이 눈치 없는 인간처럼 생각되고, 그러면 예의 바른 인간이라도 되어보자 싶은 마음에 ‘제가 괜히 오래 붙잡아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녀는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일만큼 거절하는 일도 능숙하지 못하다. 그녀는 자신을 말똥말똥 쳐다보는 사람 앞에서 끊임없이 ‘안 된다고 해. 싫다고 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번번이 ‘네’라든가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버린다. 가끔 용기를 내어 거절했을 경우에도 ‘그 사람 상처받았으면 어쩌지?’ ‘나를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민하느라 잠 못 이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부분 중 하나이다. [김애란-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언제나 남의 눈을 신경쓰고 움찔거리는, 내가 가장 혐오하면서 나의 일부분을 발견하고는 하는 부분. 사람들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더 사랑하고 싶어하면서도, 자기와 똑같이 못난 부분은 더 미워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 이 말을 보고 몇년 째 잊지 못한다.

내가 극도로 혐오하던 사람은, 내 안에서 내가 가장 혐오하던 부분과 닮아 있었다.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고, 무례하고, 역겨운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던 사람들.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안의 역겨운 부분을 없애려고 노력했고,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 나는 이만큼이나 노력하고 있는데, 넌 뭔데 그 부분을 자꾸 자랑하니? 그게 자랑스러워? 역겨운 놈.

나는 내가 미워하는 부분을 가진 사람들을 증오했고, 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내 안의 시궁창들을 원없이 미워했다. 그 때는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못된 부분만 가진 상대를 미워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취해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얼마 없다.

그래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나는 내 스스로, 고치고 싶어하고, 잘 되진 않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앤블리님이 이야기하신, 필터로 바라보기가 생각나는 밤이다.
꺼져. 난 네가 정말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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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 약점을 고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 내 장점을 나보다 더 훌륭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는 사람, 이런 이들을 싫어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나 자신.

사실...전 저보다 잘 쓴 글 있으면 리스팀 잘 안해요 ㅎㅎㅎㅎㅎㅎ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넘 쪽팔리당... 남들은 어떻게 쉽게 좋아함과 싫어함을 말하는지 ㅠㅠㅠ 나는 얼마나 작은지...

내가 혐오하는 사람은, 나와 닮아 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저는 연약해서 자기혐오를 견디지 못 했을거에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느낌이군요.
하지만 구태여 묻지 않겠습니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에서 내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정말 저와 안 맞아서 싫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킴리님 :)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진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인거 같습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와 lekang님의 글에서 제가 그동안 겪었던 마음들이 그대로 비춰지네요~!

저희 심리학과에선 모든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겪는 문제에서 온다고 믿는 파도 있으니까요.
관계 중심 심리학이라구. 사실 인간의 관계는 고통과 즐거움으로 가득하죠.
페로자님은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각잡고 심리학 관련 이야기를 한편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언제나 생각만이지 이놈!!

눈치볼게 너무 많은 사회네요 ㅠ
본인에게 집중하는 삶의 방식을 배려하는 풍토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도 본인에게 집중 못한다는 거겠죠.

음.... 그래도 너그러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날이와서, 누구보다 그녀를 안아주는 날이 자연스레 찾아오기를 바래봅니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요?
온다면 기쁨으로
한낮의 태양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릴 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아. 정말 행복하겠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다면...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밸류업님 :)

잘 읽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무서워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무서움이 싫어함으로 번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ㅎㅎ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더라구요. 나는 왜 나의 싫은 부분을 고치기 어려워할까 싶구요. 매일같이 노력해 보지만 어려울 때도 많고... 증오가 사랑으로 바뀔 수 있을지...
오늘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같이 노력해봐요 브랜든님.

그래도 요즘은 no맨들이 많이 들어나서 좋아보여요. 전 예전 부터nono거려셔.. 아예 어디 술먹으러 가자고 이야기를 안꺼내네요.. 한 번씩은 가고픈날도 있는데 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술마시자고 하면 약속 없는 한 빼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참 힘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것 같아 그래도 이정도라면 괜찮아. 라고 살고 있네요ㅎㅎ 그나마도 잘 안될때가 많은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미워하며 살 순 없으니까요ㅎㅎ 즐거운 금요일 되시길 바래요 르캉님 :)

맞아요. 어떻게든 위로하면서 살아야겠죠. 고마워요 조르바님.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네요 :)

웁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랄게요.

ㅎㅎㅎㅎ 취해서 못 보여줄 만한 깊은 곳을 보여드려 버렸군요!!!
반님의 근황 잘 읽고 있답니다. 소소한 행복을 저도 찾아보고 있어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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